매일신문

원룸시대-(하)법적 뒷받침 부실

원룸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주거 형태로 완전히 보편화됐다. 그렇지만 이에 걸맞도록 주거 여건을 뒷받침할 법적 제도는 아직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 그때문에 거주자 본인들이 피해를 입거나, 동네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원룸은 주민등록법상 호별 가구 분리가 안돼 거주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파트, 연립주택, 빌라(다세대주택) 등과 달리 건축법상 용도가 단독주택 1가구로 분류돼 가구별 주소가 인정되지 않는 것. 그래서 우편물이나 각종 고지서가 제대로 배달되지 않고 있다.

대구 남구 한 원룸에 사는 이모(22·여)씨는 "친구가 보냈다는 편지를 받지 못한 적이 있고 주민세 고지서를 제때 못받아 가산금을 낸 적도 있다"고 했다. 이태경 수성우체국 집배주임은 "호수가 구분 안돼 원룸 우편물 반송률이 일반 주택·아파트의 6배 이상에 달한다"고 했다. 잦은 이사때문에 우편물 배달 사고 민원도 잇따라 수성우체국에만 하루 평균 3건 이상의 원룸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고도 했다.

행정상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구별 주소가 없다보니 자동차세·주민세 등의 고지서, 민방위교육 통지서 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이때문에 남구청 등 일부에선 최근 제도 개선 토의를 통해 원룸에 대한 가구별 주소 부여가 가능케 주민등록법을 개정토록 정부에 건의키로 했다.

원룸 주택의 턱없이 부족한 주차장 문제는 거주자들이 동네의 다른 이웃에 피해를 입히는 경우. 원룸이 들어서면 곧이어 주차 시비가 끊이지 않아 이웃간 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원룸이 들어서면 동네 다 망친다"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영남대 주변 원룸에서 사는 대학생 박모(26)씨는 "밤마다 주차 시비로 싸우는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라며, "친구들이 놀러 왔다가 연락처도 적어 놓지 않은 무단 주차 차량들때문에 차를 못빼 그냥 두고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수성구 두산동의 한 원룸 주민 김모(42·여)씨는 "12가구에 주차장은 4면밖에 없다"며, "이마저도 형식적으로 만들어 놔 실제로는 쓰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황금동 주민 강모(33)씨는 "소방도로 중간에 차를 세워놓고 원룸에 들어간 한 직업여성 때문에 한밤에 온동네가 난리법석을 떤 적도 있었다"며 행정 당국을 비판했다.

원룸의 주차난이 심각한 것은 느슨한 관련 규정때문이다. 현재 대구시의 다가구주택 주차시설 기준은 가구당 0.7대. 원룸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지난해까지의 기준은 가구당 0.4대에 불과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대구시는 조례를 개정해 내년부터 가구당 1대로 기준을 강화키로 했지만 기존 원룸엔 소급 적용할 수 없어 너무 늦었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 경우 기준을 지난 9월부터 가구당 1대로 이미 강화했고, 인천·부산은 7월과 8월에 각각 강화했다.

대구시 물류교통과 관계자는 "예전엔 등록 숫자도 적었고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도 기준을 약하게 했던 게 사실이지만 한꺼번에 기준을 너무 강화하면 또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불법으로 가구수를 늘려 원룸을 짓는 업자들의 횡포도 주차 문제 악화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대구경찰청은 올초 당초 설계와 다르게 가구수를 늘려 다가구주택을 지은 뒤 감리 및 사용승인 등 검사를 허위로 한 혐의로 건축주 47명과 건축사 11명을 입건했다. 이들은 짜고 당초 6, 7가구로 허가 받은 3층짜리 다가구 주택을 11, 12가구로 무단 변형 시공했다는 것이다.

원룸이 초래하는 주차 문제때문에 소방 당국은 걱정이 많다고 했다. 대구 중부소방서 김영화 진압대장은 "주차시설 기준이 강화되기 전에 지어진 원룸촌의 경우 소방도로 자체가 아예 주차장이 돼 버려 화재 진압이 어려웠던 적이 한두번 아니다"고 했다. 소방차가 못들어 가면 15m짜리 소방호스를 5, 6개 연결해 불을 꺼야 하나 그만큼 시간이 지체돼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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