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허풍주의

언제부터 우리는 풍(風)에 시달리고 있다. 북풍, 세풍, 노풍, 병풍, 신 북풍 등등 그 이름도 다양하다.더욱이 "누가 어느 장소에서 누구에게 무어라고 그랬다 '카더라'"는 허풍(虛風)은 하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보태져 그럴듯하게 포장되는 것이 보통이다.

국어사전에 허풍은'너무 지나치게 과장하여 실속 없이 하는 행동이나 말'이라고 적혀 있다. 허풍을 마구 치는 것을 보고 '풍 떤다'고 하고 허풍만 떨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낮잡아 일러 '허풍선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이 말을 시작하면 '대포 놓는다' '풍 친다'고 한다.

술집에서 5분만 앉아 있으면 옆 손님의 신분을 다 알 수 있다. 밤이 깊어 갈수록 톤(tone)이 강도를 더해가기 때문이다. 허풍의 형도 다양하다."이래봐도 별이 두개야"식의 실속없이 허세만 떠벌리는'허장성세(虛張聲勢)'형, "이까짓 봉급은 부수입이야"하는'졸부(猝富)'형, "38선엔 내가있잖아"하는'포상휴가병'형···. 거기엔 경제 전문가, 정치 전문가, 법률 전문가, 부동산 전문가, 스포츠 전문가 등 별의별 전문가들이 다 있다.

주위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목청을 돋우는 우리의 언어문화는 바로 옆 테이블의 소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동경역 광장에 한 사람이 올라서면 딱 맞을 정도의 단상에 모 TV방송국에서 '스트레스 해결처'라 써놓고 마이크를 설치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주로 퇴근길 샐러리맨들이 거나하게 취해서 이 앞을 지나다 단상의 마이크를 잡고 평소 못했던 넋두리를 풀어낸다.

'사장, 보너스 왜 이리 적게 줘요' '부장, 왜 나만 찍어서 괴롭혀요'. 처음엔 무슨 일인가 하고 얼떨떨하였지만 진솔한 그들의 모습에서 소시민들을 위한 정서적 공간 확대가 왠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암시해 주는 것 같았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일단은 목청부터 돋우어 허풍으로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려든다. 이러한 허풍이 사회 통념(通念)이 될까 염려된다.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허풍은 더욱 기세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칭찬하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상대 후보와 관련된 온갖 '카더라'가 난무할 것을 생각하니 찡그려진다. 지지하는 후보가 달라도, 서로를 존중해주는 세상,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는 구시대의 허풍문화를답습하는 악순환이 끊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북도 문화재전문위원 최영식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