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편은 심부름한 죄..." '고추비리'자살 진보농협 운전원 부인 하소연

"농협 감사과정을 최하급 직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심적 고통과 상사들에 대한 배신감이 얼마나 컸으면 자살을 택했겠습니까? 농약을 마시고 죽을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결백을 주장하던 남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합니다".

청송 진보농협 군납고추 비리사건이 터져나올 무렵이던 지난달 30일 음독 자살했던 김모(39·진보농협 운전원)씨의 유족들은 지지부진한 수사에 허탈감으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기막힌 죽음에 대한 한맺힘이었다.

부인 박씨는 "납품업자 허씨가 달아나도록 경찰은 뭘 했느냐"며 "돈 받은 사람들이 발뺌하고 군 관계자들에 대한 로비도 제대로 캐내지 못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남편이 죽음으로 알리려 했던 사건의 진실을 밝혀달라며 부인은 호소했다.

또 유족들은 "경찰 수사과정에서 농협 전표의 필체를 고인의 것으로 몰아가는 등 사건의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데서 분노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나마 진보농협 직원들이 '숨진 김씨는 이번 군납 비리사건과 관련해 상사들의 지시에 의해 심부름만 했을 뿐 서류조작이나 금품수수 등에는 전혀 책임이 없다'는 내용의 서명부를 작성, 유족들에게 전달해 그나마 위로가 되고 있다.

부인 박씨는 "농협 간부들이 서로 짜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는 조직적인 비리"라며 "심부름 한 죄밖에 없는데 지난 몇달간 수시로 내려온 감사를 혼자서 감당하고, 허씨에게서도 온갖 공갈과 협박을 받으며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김씨가 죽음을 택한 이유에 대해 △상사들의 감사 거부와 책임회피 △관련 농협 직원들의 사표 제출과 잠적 △혼자 부실 책임을 져야하는 심적 부담감 등을 꼽았다. 유족들은 또 "군납이 뭐길래 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느냐"며 "허씨 배후의 누군가가 농협과 짜고 벌인 사기극에 고인이 희생된 것 아니냐"며 되물었다.

진보농협 직원들도 "김씨는 운전원으로선 감당키 어려운 업무를 계속 요구받았으며, 허씨가 엄청난 돈으로 매수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며 "승용차도 구입해줬지만 결국 김씨가 할부금을 냈고, 문제가 생기자 떠넘겼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그동안 보관했던 '군납커넥션'과 '농협비리'에 대한 자료를 진정·투서형식으로 검찰에 제출, 사건의 실체를 벗기는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부인 박씨는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농협에서 산재보험 처리를 해 줄 수 있는데도 눈치만 보고 있다"며 "남편과 같은 죽음이 다시는 없도록 이 일을 계기로 군납제도를 개선하고, 철저하게 수사해달라"며 울먹였다.

한편 원주에서 숨진 원모씨의 유족들은 "전화 한 통화없이 죽음을 택한데는 말 못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며 "죽었다고 해서 고추군납 비리와 관련도 없는 부분까지 뒤집어 씌우거나 매도하는데 대해선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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