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추 군납비리 사건 전모

2명이 음독 자살하고, 7명 구속, 4명이 불구속 입건된 청송 진보농협 군납고추 비리사건은 그간 무성했던 소문의 실체를 일부나마 보여주었다.

특히 경찰 수사과정에서 대구지역 모부대 급양대장으로 근무했던 예비역 중령이 구속되고, 경남지역 급양대장 ㅇ모(46) 중령과 국방부 품질관리소 부산분소 연구원 조모(49)씨 등 현역 군 관계자 8명도 뇌물수수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른바 '진보농협 고추비리사건'은 지난 2000년 9월 강원도 원주지역에서 군납업무를 하던 허모(37)씨가 진보에 납품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허씨는 이 지역에서 군납업을 하기 위해 영양 입암농협 등 관계자와 접촉을 가졌으나, 이미 자체 브랜드를 갖고 고춧가루 가공사업을 하고 있어 포기했다. 대신 택한 곳이 고추주산지이면서도 가공공장이 없는 진보농협인 것. 또 숨진 원주 원예농협 판매과장 원모(41)씨는 허씨가 이 지역에서 군납업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보농협에 고추 수매 선납금 7억5천만원을 입금했다.

허씨는 안동.영주.의성.영양 등지의 중.소 고추상인들에게 해골초 등 불량고추를 600g 1근당 500~1천원에 대량 구매해 청송군 진보면 신촌리 대륙농산과 푸른솔영농법인 창고에 보관, 이를 원주 원예농협과 경남 창녕농협 등에 납품했다.

허씨가 이들 농협에 납품한 건고추 물량은 현재 밝혀진 것만 경남 창녕농협 104만근(41억원 상당), 원주 원예농협 118만근(45억원)에 이른다.

허씨는 또 납품과정에서 진보농협 상임이사 이모(57.구속)씨와 경제과장 이모(38.구속)씨 등과 짜고 농협수매전표를 조작해 수매대금을 빼돌렸으며, 그 댓가로 이들에게 엄청난 금액의 뇌물을 정기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슷한 방법으로 건고추 50만근(16억원 상당)을 빼돌리고, 수매 선급금9억원을 착복하기도 했다.

특히 저질고추를 납품하기 위해 농협과 군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로비를 벌였다. 로비자금은 저질고추를 당초 매입가보다 10배 가량 비싸게 군에 납품한 시세차익과 농협간 거래에서 허위명세서를 꾸며 빼돌린 수매대금 등으로 조성됐다. 이렇게 조성된 금액은 최소 수십억원에 이르며, 결국 관련 농협의 부실 운영을 초래했다.

허씨의 허위명세서 꾸미기는 결국 진보농협이 원주 원예농협에게 빚을 진 것으로 남았으며, 결국 감사과정에서 적발돼 이사회가 관련자 5명을경찰에 고발했다. 진보농협 사건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이때부터다. 이 과정에서 허씨의 로비자금 전달역을 맡았던 진보농협 운전원 김모(38)씨는 지난달 30일 음독 자살하게 된다.

이로 인해 경찰 수사가 본격화됐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수사 착수 3일만에 사건의 몸통격인 납품업자 허씨가 인도네시아로 도피했으며, 지난 8일엔 당초 허씨의 진보농협 진출을 도왔던 다른 핵심인물 원씨가 숨진 채로 발견됐다.

농협중앙회도 감사과정에서 대부분 비리사실을 밝혔음에도 불구, 농협 이미지 실추와 내년 군납권 탈락 등을 우려해 감사자료를 공개하지 않고경찰 고발대상도 축소했다. 결국 경찰의 초동수사 미진과 농협의 조직적인 은폐가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지 못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고, 실체규명의 몫은 검찰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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