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햇볕' 폐기론 다시 고개

북한이 1994년 제네바합의 이후 비밀리에 핵 개발 계획을 진행시켜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6.29 서해교전 이후 거세게 제기됐던 햇볕정책 폐기론이 다시 고개를 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남한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을 받으면서도 뒤로는 핵개발을 추진해왔다는 것은 대북지원과 화해무드 조성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햇볕정책의 기본 구상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북한의 이같은 이중적 자세는 국민들에게 배신으로 비쳐지고 있으며 따라서 '6.29 서해도발' 사건과 '4천억원 대북 비밀지원설'로 큰 타격을 받았던 햇볕정책은 이번 사태로 그 효용성을 다시 한번 의심받게 됐다.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핵개발을 용납할 수 없다"면서 강경한 입장을 밝히는 동시에 "북한이 핵 개발 사실을 시인한 것은 이 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으나 햇볕정책에 대한 여론 악화는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핵 개발 사실을 확인했으면서도 대북 지원은 계속 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4일 제임스 켈리 미국 특사의 방북 직후 이 사실을 통보받았으나 13일 북한에 철도 연결 자재지원을 합의했다.

이같은 사실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정부가 국민을 기만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물론 외교관례상 미국 정부로부터 통보를 받은 사항인 이상 미국 정부와 동시에 발표해야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도 대북지원을 계속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것이다.

또 이러한 정부의 행위는 민족의 운명이 걸린 정책을 추진하면서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가에 대한 판단기준없이 햇볕정책 자체만을 위한 정책 추진이 아니냐는 비판을 낳고 있다. 정부가 북한의 핵 개발 사실을 알았다면 철도연결 자재지원과 식량지원을 미루고 핵 개발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현재 진행중인 남북대화 경로를 통해 이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겠다는 입장이나 북한측이 어떤 자세로 나올지는 아직 예측할 수 없다.

여기에서 북한이 우리 정부가 견지하는대로 대화를 통한 해결에 긍정적 자세를 보인다 하더라도 햇볕정책의 신뢰성 실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와버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정경훈기자 jgh0316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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