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삶의 방향

마드리드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십여 명의 동양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중 한국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반가웠다.

우리는 서로의 행선지를 물었다. 부부사이인 듯한 중년의 남녀는 삶의 거처가 있는 파리로 간다고 했고 또 한 남자는 사업체를 벌려놓은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간편한 짐을 어깨에 멘 젊은이 셋은 북구로 가는 비행기를 탈 것이라고 한다.

지구의 최고 북단에 있는 핀란드로 가서 오로라를 보고 싶다고 했다.우리는 리스본으로 가서 파티마를 찾아갈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파티마 성지에 대한 나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젊은이들은 안내 방송을 듣고 출구로 나가 버렸다. 이윽고 파리의 드골 공항으로 간다는 부부도, 아프리카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도 떠나고 우리만 남았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굴이 흰 백인과 흑인들, 황색인종인 동양사람, 인종 전시장 같았다.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본다. 어떤 이는 들떠있고 어떤 이는 지쳐 보이기도 했다. 이별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연인사이 인 듯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있다. 각각 다른 삶의 방향으로 갈라지며 울고 있는 것일까.

창 밖으로, 이륙을 하는 듯 하늘로 솟아오로는 비행기가 보인다. 함께 실려가는 사람들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같은 운명에 매달려 있다.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파티마며 어저께 가본 아빌라 성은 유명한 명승지도, 거대한 문명의 흔적이 있는 곳도 아니다. 파티마는 성모마리아가 어린 목동들에게 발현했던 장소이다. 태양보다 더 빛나는 모습으로 참나무 위에 서계시던 그분은 무죄한 사람들이 감당하고 있는 고통과 그 고통의 제거를 위하여 사람들의 회개를 호소하였다.

아빌라 성은 스페인에 있는 곳으로 '영혼의 성'을 저술한 데레사 성녀가 태어난 곳이다. '영혼의 성', 그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자 그는 이 세상 부귀와 영화를 모두 포기했었다. 그분의 삶의 방향은 우리의 방식과 달랐었다.

드디어 우리는 출구로 나갔다. 언제 왔는지 일본인 부부가 곁에 서 있다. 국제결혼을 하여 포르투갈에 살고 있는 아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자식과의 재회를 위해 차려입은 화려한 옷차림이 어딘가 허전해 보인다. 만남과 헤어짐, 이런 쓸쓸한 행위들을 그 노부부는 몇번이나 되풀이할 수 있을까.

그 도달점은 어디인가

뮌헨에서 만났던 옛 친구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는 죽는 날까지 그 곳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하며 그가 뮌헨에 정착하게 된 내력을 설명해 주었다. 여학교 시절, 그와 나는 같은 성당의 성가대였었다. 우리는 경건한 성가를 부르기도 했지만 틈틈이 사랑의 노래, 그리움의 노래도 자주 불렀었다. 꿈 많던 소녀 시절이였다.

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수도복을 입고 이곳에서 왔다. 그러나 삶의 방향은 엉뚱한 쪽으로 바뀌어지고 지금은 혼자 타국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여행 중에 많은 사람을 만났다. 어떤 사람은 동양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한국을 탈출하듯이 떠나와 삶의 방향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독일 팟사워의 수도원에서 찾아뵌 '라, 스테파노' 신부님, 그 분들은 일생을 한국에서 봉사하시다가 지금은 은퇴하여 본국에 와 계신다.

우리는 그 노(老)사제들이 봉헌하는 미사에 참여하며 인간의 삶을 여러 방향으로 인도해 가는 어떤 섭리를 느끼기도 하고 그 삶의 방향에 따라 묵묵히 걸어가는 인간의 발걸음, 그 도달점을 생각해 보기도 하였었다.

이윽고 비행기는 리스본에 도착하고 우리는 땅 위에 내려섰다. 짐을 챙겨든 나는 우리를 이곳까지 이끌고 온 큰 존재를 탐색하듯 올려다 보았다. 사람들은 싣고 가는 은빛 비행기 한대가 공중에 떠 있었다.

정혜옥(수필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