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드컵대회 때 우리는 기적 같은 성과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았다. 그 여운과 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저절로 이뤄진 신화는 결코 아니다.
그 이면에는 경기를 기대치 이상으로 이끌어낸 태극전사들의 투혼과 히딩크 감독의 빼어난 용병술과 리더십이 있고, 온 국민의 하나가 된 열망과 인내가 있었다. 실력이 탄탄하지만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한 선수들의 경우도 어느 누구 한 사람 바깥으로 불만을 토로한 사실마저 없다. 무엇보다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선수 선발이 이뤄졌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지금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국제적 무한경쟁에 노출돼 있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대학의 연구실에서 얻어진 성과가 인터넷을 타고 실시간에 세계로 전해지는 현실은 그야말로 '국경 없는 전쟁'이다. 매일 열리는 월드컵과도 다를 바 없다.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 대비해 고급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3년 전에 도입된 '두뇌 한국(BK21)'은 바로 그런 프로젝트다.
▲하지만 'BK 21' 사업은 첫 걸음부터 시끄러웠다. 대학들의 치열한 로비와 지원 대학 선정 과정의 잡음, 특정 학교 집중 지원과 이로 파생된 대학과 지역의 서열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학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화와 학문별 지원의 불균형, 구조조정 병행에 따른 교수들의 신분 불안을 부르기도 했다. 연구비를 집행하는 과정에서도 인건비를 중복계상하거나 허위 지급되고, 심지어는 해외 관광비로 쓰인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 'BK 21' 사업 중간 평가 결과 서울대 등 4개 사업단이 급기야 실적 부진으로 중도 퇴출되고, 전체 122개 중 76개 사업단이 같은 이유로 지원금이 삭감됐다 한다. 이만 보더라도 1조4천억원의 국민 혈세가 얼마나 방만하고 부실하게 쓰였는지 알 수 있다. 퇴출된 사업단에 지금까지 들어간 연구비는 허공에 날아간 셈이나, 연구비 유용과 인건비 부당 지급 등으로 학문의 전당인 상아탑까지 '세금 나눠먹기'에 가세했다는 사실은 부끄럽고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칼은 매섭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BK 21'사업에 대한 그간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이상 잘못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물어야 한다. 지금까지 긍정적인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앞으로 부실을 확실하게 막기 위해서는 연구 실적 평가에 따라 지원금을 엄정하게 배분하고 사용 명세도 명확히 공개하며, 학문의 균형 발전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 사업은 아직 진행 중이다. 남은 4년간 대학의 연구 수준을 크게 끌어올려 월드컵 때의 '붉은 함성'처럼 지구촌에 널리 울려 퍼지기를 기대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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