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개관식을 가진 대구시 치매·노인 전문병원.수성구 욱수동 월드컵 경기장 맞은 편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병원 앞쪽으로는 도로가 있고 뒷쪽으로는 산,옆으로는 저수지가 보인다. 앞쪽 도로 너머에도 큰 산이 감싸안고 있다. 경치가 치료 및 요양에는 안성맞춤인 셈.
이 병원은 대구시와 곽병원이 함께 만들었다. 국비 18억, 시비 18억, 운경재단 돈 16억원이 투입됐다. 대구시가 소유하고 곽병원이 운영하는 형태로 돼 있다.
가을 햇살이 제법 따갑던 지난 16일 오후. 김성규(70·가명) 할아버지는 이 병원 1층 놀이치료실에서 기차 모자이크를 맞추고 있었다.두 달 전 입원했다는 할아버지는 그 사이 많이 달라졌다고 옆의 치료사가 귀띔했다. 인지기능이 떨어져 문제 해결 능력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놀이치료를 통해 감각 등 몸의 미세한 기능이 많이 회복됐다는 것. 이날도 느리기는 했지만 기차를 다 맞춰냈다.
2층 입원실에선 할아버지 2명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할아버지들은 노래를 그치지 않았다.간호사도 옆에서 함께 박수를 치며 무언가를 웅얼대고 있었다.
이 곳의 특색은 노인시설이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말끔하다는 것. 노인시설이라면 가장 먼저 특유의 냄새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이곳은 달랐다. 복도 곳곳에 숯이 배치돼 있었고 나무와 풀도 자라고 있었다. 2층, 3층 층층이 정원을 만들어 놓은 것.
노인들이 무료함을 느끼지 않게 만드는 것이 병원측의 목표라고 했다. 놀이치료, 미술치료, 원예치료, 음악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마련돼 있다는 얘기. 박지은(30·여) 사회복지사는 "노인들의 개인 욕구를 잘 파악해 어떤 프로그램을 원하는지 알아내야 한다"며,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끼도록 분위기를 만들려 노력한다"고 했다.
최정애(73) 할머니는 빨래집게를 갖고 열중해 있었다. 역시 놀이치료의 일종. 이틀 전에 이곳으로 왔다는 할머니 옆에서는 남편 김규환(77) 할아버지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위문 왔다는 것."우리 할멈이 지금까지는 집에 있었어요. 여기 오니까 좋습니다. 중풍에 걸린 후 가족들이 애를 많이 썼는데 많은 짐을 덜었어요. 집이 달서구 월성동이어서 좀 먼 것이 탈이지요. 이런 시설이 동네마다 많이 생겨야 해요".
김 할아버지의 바람처럼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병원 및 요양시설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 갓 걸음마 단계일 뿐. 대구시에 따르면 시내 65세 이상 노인 15만7천여명 중 치매환자는 1만3천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그 중 입원 요양이 필요한 사람도 1천800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내 관련 시설은 치매 전문병원 1개, 치매 요양시설 3개에 불과하다. 유일의 치매 전문병원인 이곳의 병상도134개 뿐이다. 치매 요양시설 3개가 받아 들일 수 있는 노인도 겨우 263명. 1천명이 넘는 치매노인들이 갈 곳이 없는 것이다.게다가 최초 유일의 전문병원인 이곳에서도 문제는 많았다.
입원자 가족들의 가장 큰 애로는 병원 이용료가 너무 비싸다는 것. 중증 환자의 경우 한달 입원료가 150만원에 이른다. 증세가 그리 심하지 않은 노인들도 100만원은 내야 한다. 서민들은 입원을 꿈도 꿀 수 없다는 얘기. 10여년째 중풍으로 고생한다는장성민(68·가명) 할아버지는 "시집 안 간 딸이 입원비를 대 준다"면서도 딸의 어깨에 놓인 입원비의 무게는 알고 있는 듯 했다.
입원료가 비싼 가장 큰 원인은 의료보험 적용 영역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월 평균 60만원에 이르는 간병비·식비가 의료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것. 또 3개월 이상 장기 입원할 경우, 의료보험 청구를 해도 청구액의 40%가 삭감됨으로써 부담이 되돌아 온다고 했다.
두번째 문제점은 영세민들의 입원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 이 병원은 전체 병상의 33%를 기초생활보장법상 보호 대상인 영세민을 입원토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간병비·식비 등 많은 돈을 부담할 수 있는 영세민은 드문 것이 현실.
입원 필요성이더 많을 수 있는 영세민에게 문을 열려면 최소 이들의 간병비·식비 등 부담만이라도 정부가 대신 져 줘야 하는 것이다.이래저래 이 병원으로 걸려오는 전화에는 항의성의 것이 많다고 했다. "대구시에서 만들었는데 왜 그리 비싸느냐"는 것.
이 병원 이태준 부장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도 그같은 사정을 알고 있지만 대책이 나오지 않으니 영세민은 물론이고 중산층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이 부장은 "국가는 노인병원에 대한 보험수가를 별도로 책정하고 지방정부는 어려운 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053)812-1212.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