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20년 간직 독립지사 유필 후손찾아 드리는게 도리

"독립운동 지사의 유필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선열의 애국 충정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후손에게 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 분의 것인지 확인해서 맞다면 후손을 찾아 주십시오".

대구 미주건설 이사인 백승춘(55.대명9동)씨는 20여년간 소중히 간직해 왔다는 유묵을 매일신문사에 맡기면서 선열들의 높은 뜻을 거듭 칭송했다.

유필은 세로 130㎝ 가로 37㎝ 크기의 명주에 중국 북송 시인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 500여자를 행서체로 쓴 것. 하얀 명주는 누렇게 바랬고 여기저기 헤진 모습이 수십년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백씨는 "글씨 끝에 적힌 이름이 이승화(李承和)로 돼 있어 독립운동가이셨던 그 분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독립운동가 이승화 선생은 1876년 안동에서 태어나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통해 애국계몽운동에 뛰어든 뒤 나라가 망하자 1911년 종질인 석주 이상룡(李相龍) 선생과 함께 만주로 망명해 경학사.신흥강습소 등에서 활약했다.

특히 1915년엔 국내로 들어와 경상.충청.경기에서 군자금을 모으고 동지를 규합하던 중 일본 경찰에 붙잡혀 2년간 옥고를 치른 뒤 다시 만주로 건너가 독립무장단체인 서로군정서에서 활동하다 1927년 현지에서 순국했다. 1990년엔 애족장이 추서됐다.

백씨는 이 유필이 선친으로부터 1980년에 물려 받은 것이라고 했다. 이승화 지사의 유필일 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은 한달 전쯤.

그러나 이 유필이 독립지사 이승화 선생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95년에 광복 50주년 기념 '애국지사 유묵전'을 통해 이승화 선생의 간찰(簡札)을 공개한 바 있는 계명대 서예과 김양동 교수는 "이 유필의 필체와 선생의 간찰 필체가 필벽(筆闢)에서 유사점이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상룡 선생의 한 후손에 따르면 이승화 선생의 직계 후손들은 현재 중국 하얼빈에 살고 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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