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북정책이 왜 이렇게 비실비실 하는 지 참으로 안타깝다. 국가 간의 관계는 역사성이나 의리 같은 정의적(情誼的) 측면에 영향 받기도 하나, 궁극적으로 냉엄한 현실주의에 기반한다. 호혜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있는 협상과 타협의 이면에도 항상 힘의 논리가 존재한다.
이런 '총 없는 전쟁'에서 한국과 같은 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철저한 준비와 슬기로운 대응, 그 것 뿐이다. 그 점에 비춰본 우리의 외교력은 한심한 수준이다. 냉엄한 현실을 소설화하고, 죽음의 먹구름을 장밋빛으로 각색한다. 이런 현실인식으로 어떻게 세계화의 파고를 넘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정부는 99년 북한의 핵 개발 동향을 포착하고도 이를 공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햇볕정책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여 쉬쉬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정말 이럴 수가 있는가. 국가안보상의 중대 위협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햇볕정책의 희생물로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부는 그 의혹을 내외에 알려 국제사회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북한의 핵 투명성이 확보될 때까지 남북교류를 유보시켰어야 마땅했다. 국가의 생존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속내 없음은 최근 사태에서도 몇 차례나 노출 돼 저런 태세로 외교전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북한의 비밀 핵 개발 시인을 '미국에 대한 대화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한 것은 장밋빛 각색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 개발 사태를 '제네바 협약 파기'로 정리하자,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말한 부분도 그런 환상을 반영한다. 우리의 속셈을 다 드러내놓고 무슨 외교교섭을 하자는 말인지. 북한 대변에 급급한 싱겁고 실없는 외교당국자들을 보면 한숨만 깊어진다.
목마른 자가 샘을 판다. 우리 정부는 남북교류의 최대 수혜자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북경협을 유보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의 몫을 우리가 더 크게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정부가 남의 샘이나 파주러 다니는 어릿광대로 비쳐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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