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디어 창-연예인 체험프로그램

누구나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일탈을 꿈꾼다. 다른 사람의 인생과 바꾸어서 한번쯤 살아가고픈 꿈이 있기에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도록 문학과예술의 변주가 계속되는 것일게다.

TV는 이런 소박한 욕망을 대리만족시켜 주기도 한다. KBS1 '체험 삶의 현장'(일 오전 9시)과 KBS2 '도전 지구탐험대'(일 오전 9시40분)는연예인들이 지구의 오지나 노동의 현장을 찾아가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들이 선사하는 일탈의 경험은 온당한 것인가.

'체험 삶의 현장'은 주로 인기 배우나 가수들이 노동의 현장에서 하루동안 그 일을 배우고 받은 일당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쓴다는 식이다.하지만 이들의 노동은 너무 가볍다. 진지하게 일을 배우기 보다는 현장에 흥을 북돋우는 정도의 역할만 할 때도 있다. 출연자들은 받아온 일당에 대해서'겸손'해한다. 그 일당만으로 생활을 영위해가는 대다수의 서민들은 이들의 겸손한 표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더구나 이런 식으로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것은 생색내기의 혐의를 벗기 어려워보인다.

'도전 지구탐험대'는 세계의 오지를 찾아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거나 우리에게 생소한 민속춤·기술 등을 연마해 짧은 기간 내에 성취감을 안겨준다.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보여지는 이들의 경험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들의 기질을 그대로 보고있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든다.

'오지'에 살고 있는 이들은 우리들에게 '미개'하게 비친다. 주로 원주민들은 우리보다 짙은 피부를 갖고 있는데, 우리가 그들을 보는 시선에서수십년 전 백인이 우리를 보던 눈길이 연상된다. 가슴을 드러내놓고 사는 원주민 여인들의 가슴은 편집되지 않고 그대로 화면에 나간다. 과연 백인 여성이었다면 그대로 내보냈을까.

또,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자세가 부족하다. 보통 제작진이 카메라를 들고 찾아가는 곳은 오랜 전통을 간직한 곳이 많다. 수백, 수천년간 내려오는 그들의 경험과 삶을 단지 며칠 만에 체험하면서 출연자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비하하거나 '신기한' 시선으로 대할 때가 많다.

단시간 내에 주어진 기술을 습득하고 밤을 새워 육체를 혹사시켜서라도 성취해내는 것. 그리고 화면에 보여주는 것. 이것은 우리의 근대화 과정과 닮아있다. 다른 나라가 수백여년간 진행해온 근대화 과정을 짧은 기간에 이루다 보니 깊이와 성찰이 부족했다. 속도와 기교,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중시하는TV 화면에서 우리의 기질을 읽어낸다면 무리일까.

'도전 지구탐험대'는 기본적으로 출연진들에 대한 안전장치조차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이미 준비되지 않은 일정을 강행하던탤런트가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은 아찔하게 느껴질 정도의 모험을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감행하기도 한다. 일요일 오전, 재미와 교훈을 겸비하되 노동의 가치와 인류학적 깊이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