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 곧 전방 고지에 얼음이 얼었다는 소식이 나올테고 그러면 추풍령 고개밑 이곳 김천에도 겨울이 닥칠텐데…. 지난 여름 태풍 '루사'가 김천땅을 덮친 지 50일이 지났지만 그 엄청난 물난리를 당한 김천 지역에는 아직도 수마에 할퀸 상처가 곳곳에 남아있다. 이제사 수해지역에 대한 항구 복구 공사 계약이 시작되고 있으니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수재민들은 다가 올 겨울나기에 걱정이 태산이다.
그나마 도심지역에서는 복구를 위한 대대적인 장비 지원과 자원봉사 활동이 집중적으로 이뤄져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지만 읍·면 산간마을 대부분은 굴삭기 등 중장비로 도로만 대충 응급복구된 채 수해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기 때문.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등 수해가 극심했던 지역 곳곳에서는 수재민들을 위한 컨테이너하우스가 다닥다닥 붙은 임시마을이 생겨났다. 김천시는 이들을 위해 구성면 34동, 지례면 25동, 대덕면 24동 등 13개 읍면에 148동의 '컨테이너 동네'를 조성했다.
컨테이너하우스는 길이 6m, 너비 3m, 면적 5.5평에 고작 전기시설을 비롯한 바닥판넬, 싱크대, 가스레인지가 살림도구의 전부다.
시에서 제공한 컨테이너하우스는 임시방편으로 급조된 탓때문에 아직 10월인데도 외풍이 심하고, 보온성이 거의 없는가 하면 여기다 더운물조차 사용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앞으로 입주민들의 겨울나기 고통은 불보듯 뻔하다.
기자 일행이 찾아간 지난 19일. 공용 이동식 간이 화장실에서 흘러 나오는 분뇨냄새로 코를 막는데 이곳에 사는 주민들에겐 일상사가 된 듯, 그보다 더한 고생들을 털어놓는다.
수해가 나기전에 다방 운영을 해온 허달옥(58·구성면 상좌원리)씨는 "컨테이너하우스의 바닥은 그런대로 따뜻한데 10월 날씨에도 외풍이 너무 세어 큰 걱정"이라며 "얼음이 얼고 눈이 오는 등 본격적인 겨울이 닥치면 어떻게 버텨낼 지 정말 막막하다"고 말했다.
또 허씨는 "컨테이너하우스 창문에 턱이 설치되지 않아 비만 오면 안으로 물이 스며들어와 온통 물바다를 이룬다"며 "온수보일러가 설치되지 않아 세수나 목욕은 물론 빨래도 어려워 공동 빨래터를 만들고 물을 데울 수 있는 시설이 설치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한다.
허씨와 바로 붙은 컨테이너하우스에 사는 박미향(35)씨는 "유치원에 다니는 자매가 모두 감기가 들었다"면서 "컨테이너하우스 바로 옆에 흐르는 하수구가 복개 되지 않아 심한 악취와 해충이 들끓어 하루를 보내는 일이 고역"이라고 말했다.
김천지역에서만 수해로 흔적없이 사라진 주택이 271동에 이르고 반파 240동, 침수 1천412동 등 모두 1천923동에 이른다. 반파나 침수된 주택들도 결국은 허물고 새로 건축을 해야 할 형편이지만 수재민들은 돈걱정이 앞선다.
자연재해대책법 개정에 따른 주택복구비 정부 지원금(18평기준)은 모두 3천240만원. 국고 1천296만원(40%)이 무상보조로 지원되고, 나머지 1천944만원(60%)을 연리 3% 5년거치 15년 상환 조건(자부담·융자)으로 수재민들이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김천시는 우선 겨울이 오기 전에 신축이나 수리해야 할 주택은 약 511채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러나 10월 현재 신축에 나선 것은 21%에 불과한 105채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김천시는 보고 있다.
홍두봉(65·지례면 상부1리)씨는 "지난 추석때 컨테이너에서 차례를 지낼 수 없어서 아들집에서 치렀다"고 말하고 "도저히 올 겨울을 날 수 없을 것 같아 집을 새로 신축키로 했는데 정부지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따로 3천만원 정도 빚을 낼 요량으로 설계를 마쳤다"고 말했다.
태풍 '루사'로 김천지역에서 사망 20명, 실종 7명 등 엄청난 인명 피해가 났고, 농경지 1천449㏊가 유실 또는 매몰됐는가 하면 모두 29만3천마리에 달하는 한우·돼지 등의 가축이 물에 떠내려 갔다. 단 이틀 사이에 쏟아진 폭우에 무려 3천518억원의 재산피해가 났었다.
가을 추수가 한창인 요즘 당장 먹고 잠을 자야하는 집도 중요하지만 농경지까지 한꺼번에 잃은 수재민들은 쌀 한톨조차 거둬들일 수 없는 처지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수재민들은 코앞으로 다가온 춥고 긴긴 겨울을 어떻게 나야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강석옥기자 sokang@imaeil.com
김성우기자 swkim@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