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지방자치와 지역 시민사회

대구지역에서 지난 9월까지 경찰에 신고된 시민들의 집회는 모두 2만4천여건에 달한다고 한다. 신고된 집회가 모두 열렸다면 하루 평균 89.4회이지만, 신고된 집회 가운데 95%는 열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실제 열린 집회의 건수는 총 1천112회, 하루 4회 꼴로 결코 적지 않았다. 이 가운데에도 대부분은 다른 시민들이나 언론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이제 집회와 시위는 어느 정도 제도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집회와 시위가 제도화되었다고 해서,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었거나 또는 이러한 집회를 반영하여 지방자치가 성숙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신고된 집회 가운데 경제·사회분야의 민원성 집회가 50%로 가장 많았고, 노동 관련 집회가 44%를 차지했으며, 대학이나 재야 단체의 집회는 4%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러한 자료로 보면, 지역 사회의 공공성을 위한 시민사회 운동은 상대적으로 매우 저조하거나 침체되어 있다고 하겠다.

지방자치의 주체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의회라기보다 지역사회의 시민들이다. 즉 진정한 지방자치는 지역 시민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민주적 합의와 이의 참된 실천에 기초한다.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역으로, 현재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실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우리 나라에서 시민사회가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서구의 경우 시민사회는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 더불어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발달해 왔지만, 대부분의 제 3세계 국가들에서는 20세기 후반까지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국가들이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독립된 정치와 자율적 시민사회를 형성할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또한 해방된 이후에도 이 국가들에는 경제적 종속과 정치적 독재로 인해 시민사회의 발달이 지연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지역 시민사회는 지방자치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며,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고 저절로 발전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 나라의 시민사회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에도 냉전체제의 그늘 속에서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억눌려 있었다.

시민사회가 발전하게 되는 직접적 계기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 나라의 시민사회의 역사는 불과 10여년 정도밖에 되질 않는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국민들의 의사에 의해 선출된 정부라고 할지라도 시민사회의 올바른 발전을 유도하지 못했으며, 지방정부는 지방자치제에 의해 구성되었다고 하지만 역시 지역 시민사회의 발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시민사회는 오히려 개인주의화되었고, 다양한 이해관계로 점점 파편화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치 권력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시민사회를 동원하고자 했으며, 그 와중에 각 지역의 시민사회 의식은 조작된 지역감정에 의해 휘둘려지기도 했다.

물론 이와 같이 시민사회의 미발달 또는 파행적 성장은 외적 조건에 의해 규정된다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시민들 자신에게 그 책임이 있다. 사회의 복잡성 증대와 급속한 변화는 시민 개개인들로 하여금 의식의 혼란과 신체적 피곤함을 느끼도록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사회적 공공성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자신의 개인적 사정에 매몰되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할수록 개인은 더욱 피곤해지고 퇴보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역사회의 외적 조건이 시민사회 운동의 침체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시민단체의 프로그램이나 심지어 집회에조차 시민들이 무관심한 상황에서, 시민단체의 활동가들은 처절한 심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시민들이 무관심하다고 해서, 시민사회 단체들이 시민들의 여론을 대변하지 못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끌어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들이 없는 시민사회 운동은 그 존재 의미를 상실하고 퇴행하게 될 것이다.

이제 시민과 시민사회가 보다 성숙되어야 한다. 이해당사자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요구 수용을 주장하는 집회나 시위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자율적 정치와 민주적 발전을 위한 공공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그 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지방자치에 걸림돌이 되었던 3김시대가 청산되고 지역감정이 더 이상 정치적 이슈가 되지 않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 즈음해서 시민 개개인과 지역사회운동단체들은 자신의 문제를 다시 한번 성찰하고, 진정한 지방자치와 시민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대구대 교수.지리학 최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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