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단풍에 물든 태백산맥의 연봉들을 내려다본다. 무량수전이 1천여년씩이나 봐오고 있는 장쾌한 경관이다. 저 멀리 아련하게 산봉우리와 산줄기가 꿈틀꿈틀 남으로 남으로 치달린다.

이 모습만으로도 부석사 무량수전은 이름값을 한다. 이곳을 찾아온 이들 대부분이 연신 탄성을 쏟아낸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야 한국 최고의 아름다운 건축물도 눈에 들어온다.

가을의 감동은 부석사 오는 길에 이미 경험한 터다. 풍기에서 부석사까지의 931번 도로 20km는 환상적인 은행나무 가로수길이다. 차가 지날 때마다 노란 은행잎 소나기가 쏟아진다. 은행나무 너머 양옆은 온통 사과밭. 빨갛게 잘 익은 산사과들이 주렁주렁 보기좋게 매달렸다. 부석사는 산사에 들기 전부터 이렇게 가슴을 뛰게 만든다.

은행나뭇잎은 일주문을 지나서도 이어진다.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200여m 양쪽 은행나무 길은 아예 노란 터널을 만들었다. 역시 은행나무 바로 뒤로는 산비탈 과수원에 주렁주렁 매달린 붉은 사과가 유혹한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달콤한 산사과 향이 입안에 맴돈다. 천왕문 왼쪽은 단풍과 은행나무가 잘 어울린 숲이다. 이번 주말쯤이 절정.

40리길 은행나무 가로수

그러나 자칫 가을풍경에 도취되어 부석사의 진정한 멋을 놓친다면 안될 일이다. 부석사는 국보와 보물을 9개나 가지고 있는 문화보고이기 때문이다.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을 비롯해 석등(국보 제17호), 조사당(국보 제19호), 조사당 벽에서 떼어낸 벽화(국보 제46호),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등이 국보급 문화재다.

천왕문을 지났다고 해서 바로 극락정토는 아니다. 범종루와 안양루, 무량수전이 아홉 개의 거대한 석축 위에 자리를 잡았다. 안양루 뒤로 무량수전의 지붕만 겨우 보일 뿐. 이쯤이면 마음이 바빠진다.

범종루와 안양루 아래 돌계단을 한번에 오르자 무량수전 앞뜰. 땀도 식힐 겸 고개를 돌리자 시야가 확 트인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저 풍경들을 보지 못했을까. 하긴 뒤돌아 볼 틈도 없이 내달려 올라왔다.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한번씩 되돌아보는 여유. 이 가을 사색의 계절에 던져보는 화두다.

최고 건축물 무량수전

다시 무량수전을 올려다본다. 중간 부분이 불룩한 '배흘림기둥'으로 알려진 목조건물. 날아갈 듯한 추녀의 곡선미와 어울려 '가장 아름다운 목조건물'이란 수식어도 낯설지 않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의 명에 따라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그러나 무량수전은 고려시대인 1043년 부석사를 중창할 때 지었다. 그래서 무량수전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서 석양을 보는 것은 이른 아침 은행 숲을 산책하는 것과 맞먹는 행운이다. 희미한 구름에 휘감긴 연봉들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는 고요한 산사의 분위기와 어울려 경건하다.

소수서원도 필수 코스

돌아오는 길엔 소수서원을 들러봐야 한다. 백운동서원이었다가 퇴계 이황 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았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 살아남은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다. 몇 년전 새로 단장을 해 옛 맛이 덜해졌다지만 수백년 적송 군락지 속에 조용히 숨어있다.

서원 입구의 당간지주도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당간지주는 절 입구에 괘불을 걸던 기둥 받침. 이 당간지주는 서원터가 원래는 절터였음을 말해준다. 조선시대 불교를 억누르고 유교를 숭상하던 억불숭유정책의 산물이다.

글.사진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맛있는 집

△가든 미가=가을 산사로의 여행에 빠질 수 없는 게 절밥. 영주시 부석면 소재지에 있는 '가든 미가'는 전통 사찰음식을 맛있게 재현해냈다. 한국 전통 사찰음식문화강좌를 마친 박정매(47.여)씨가 인공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고 음식을 만들어낸다.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파, 마늘, 부추, 양파, 달래 등 '오신채'를 넣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일반인들을 위해 된장찌개와 김치에는 넣는다. 이마저도 사찰식으로 먹고 싶으면 하루전에 예약하면 OK. 고기나 생선이 없는 채식이라 맛이 담백하고 깔끔한 게 특징.

사찰정식 1인분 1만5천원. 사찰비빔밥과 사찰 된장찌개는 7천원. 부석사 가는 국도변에 있다. 054)633-7415∼6.

△순흥전통묵집=풍기에서 소수서원 가기 직전 순흥면 소재지에 고향냄새가 물씬 나는 메밀묵집이 있다. 순흥면소재지로 가는 오른쪽 길로 빠지면 순흥어린이집과 동인장여관이 보인다.

앞쪽이 정옥분(72) 할머니가 30년간 손맛을 다져온 순흥전통묵집이다. 30년을 한결같이 메밀묵만을 끓여왔다. 걸쭉하게 끓인 뒤 알맞게 잘 굳히는게 맛의 비결. 요즘은 하루 전날 묵을 끓여낸다.

무 채나물과 김을 듬뿍 넣어 상을 받는 순간부터 군침이 돈다. 반찬으로 나오는 명태무침도 이 집의 별미다. 명태무침만으로도 밥 한그릇은 해치운다. 명태무침을 먹기위해 일부러 찾는 단골이 있을 정도. 메뉴는 묵 한 사발과 조밥이 나오는 전통묵밥(3천5백원) 하나 뿐. 054)634-4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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