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평짜리 사글셋집. 유경희(45·여·대구 북구)씨 가족의 작은 보금자리에는 열흘 전 식구가 한 명 더 늘었다.
한 아주머니의 등에 업힌 채 찾아온 새 식구는 여진이(13개월·여). 유씨는 이날부터 다시 '아기 엄마'로 돌아갔다. 큰 아이가 대학생, 막내가 중학생이니 10여년만에 젖먹이 엄마로 복귀한 셈.
유씨는 부모의 양육능력 부족으로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이웃의 가정에서 보살피자는 '대안가정 운동'에 참여한 대구지역 첫 어머니. 지난달 매일신문을 통해 '대안가정 운동' 소식을 알고는 고민 끝에 한 이웃 아기의 엄마가 되겠다고 지난 추석 무렵 가족들에게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유씨의 봉사 결심에는 자신이 겪었던 시련이 밑거름 됐다. 외환위기로 '도산 태풍'이 몰아쳤던 1998년 남편의 회사도 문을 닫아야 했다. 모든 재산이 날아갔고 살던 아파트에서조차 쫓겨나다시피 나오느라 갈 곳마저 없었다.
충격은 아직 채 가시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이 일용직 일자리를 찾아 갖은 고생 끝에 2년 전 겨우 사글셋집은 마련했지만 한달 수입은 100여만원에 불과하다. 유씨도 공공근로 풀 뽑기, 남의 아이 돌봐주기(베이비시터) 등 안해 본 궂은 일이 없었다.
"남의 아기를 돌봐 주다 뭔가를 깨달았습니다. 돈을 받는 베이비시터를 하면서 그 아이들의 가정이 깨지는 걸 봤던 것입니다. 양육비를 못받는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가정이 깨어지면 이 불쌍한 아이들이 어디로 가야할까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지요. 주머니가 넉넉잖아 돈은 못 도와주더라도 내 몸과 시간은 버려지는 아이들을 위해 쓰자고요".
유씨의 결심은 불과 며칠 사이에 벌써 귀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표정 없던 여진이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오고 사람을 겁내던 아이가 가족들에게 안기려 떼를 쓰게 된 것.
"여진이가요, 우리 집에 온 직후 꼬박 이틀 동안 아무 표정도 나타내지 않았어요. 이러다가 이 아이가 되레 잘못되는 거 아닌지 싶어 잠이 안 왔습니다. 이틀 동안 안고 입이 부르트도록 뽀뽀해 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잘 놉니다".
'늦깎이 엄마'가 될 수 있었던데는 자녀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신부가 되겠다며 신학을 공부하는 아들과 수녀의 길을 걷고자 하는 딸이 엄마의 결심을 떠받쳐 준 것. "아기를 키우게 되면 너희들에게 돌아갈 용돈이 줄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더니 그래도 괜찮대요. 넉넉하던 시절에도 저는 우리 아이들 생일잔치할 돈을 고아원에 맡겼었습니다. 그때도 애들은 엄마를 이해해 줬습니다".
유씨는 자신에게서 재산을 거둬가신 하느님이 대신 봉사할 기회를 큰 선물로 주셨다고 했다. 마흔 중반에야 '제대로 사는 법'을 알았다고 웃던 유씨는 "여진이가 우리집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 꼭 낳아준 엄마·아빠 곁으로 돌아가길 날마다 기도한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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