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특강 가진 작가 조정래

"분단이란 민족사적 질곡이 결코 나와 너 그 누구와도 별개의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현재는 과거의 아들이요, 내일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역사의 탁류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25일 대구전시컨벤션센터에서 가진 '문학과 민족에 대하여'란 주제의 특강에서 작가 조정래씨는 자신의 대하소설 집필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했다. 민족의 통한을 외면할 수가 없어 '아리랑'을 썼다고 했다. 그리고 60년대 이후 격동의 30년 현대사를 특히 젊은층들에게 진솔하게 알리기 위해 '한강'을 출간했다고 한다.

작가는 '태백산맥'.'아리랑'.'한강' 등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아우른 대하 창작소설 3부작 32권이 1천만부를 돌파한데 대해, 서러운 역사의 땅에서도 민족과 민중의 건강성이 건재하다는 방증이라고 자위했다. 근대사에 대한 합의조차 이끌어내지 못한 이 땅은 여전히 '대하소설의 시대'일 수 밖다는 얘기다.

통속소설 한편 써 볼 의향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작가는 태백산맥의 '소화', 아리랑의 '필녀', 한강의 '임채옥' 등 여주인공과 관련된 애절하고 가없는 사랑 이야기만 떼어내도 진한 연애소설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단지 소설 속에 녹아 있는 다양한 삶의 양식 중 일부분일 뿐, 분단시대의 작가가 내세울 대주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연애소설을 쓸 시대적 상황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작가는 때로는 이념공세에 시달리기도 하고 사상 불온자의 굴레를 쓴 어려움도 겪었지만, 그것은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세계사상 유래없는 질곡의 역사를 가진 이땅의 작가로서 민족 모순의 총체적 귀결인 분단현실을 뛰어 넘고 통일을 지향하는 소설을 쓰는 것은 마땅한 책무였다는 것이다.

"남과 북의 정권이 분단을 악용해 독재정권을 유지하면서 겨레의 역사를 반쪽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서로 원수가 되어 적대감만 확대 재생산해 왔지요".

작가는 바로 여기에 문학이 개입해야 하는 역사적 필연성이 있었다고 했다. 분단 극복의 문학이 한국문학의 원류가 되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법과 체제를 뛰어넘지 않고는 참된 역사소설을 쓰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고백이다.

그래서 나이 마흔이 넘어서 작정하고 쓰기 시작한 게 바로 '태백산맥'이었다는 것. 작가는 해방공간과 한국전쟁기의 이같은 이야기를 썼다가 지난 90년대에는 용공주의자로 지목을 받아 검찰의 조사도 받았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쓴 죄(?)가 사정당국의 수사 대상까지 되었지만 이젠 그때의 작가적 상상력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작가는 남북정상회담과 남북이 함께 한 아시안게임을 그 예로 들었다.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민족동질성을 확인한 역사적 순간. 과거에는 어디 꿈엔들 생각이나 했던 일이냐며 작가는 반문한다.

"이데올로기는 시한부적이지만, 민족은 영원합니다. 지금은 식민지 시대의 역사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분단시대의 민족 반역행위까지 단죄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또 작가는 그러나 모든 가치와 인식의 기준을 다시 미국이나 서구에 의존하고 있는 이 땅의 지식인들을 질타하며, "우리가 과연 제 넋이 있는 민족인가"라고 탄식했다.

더 이상 굴절된 역사와 현실을 우리 자식과 손자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욕의 역사에 침묵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 작가뿐 아니라 이 시대 모든 지식인들의 책무라고 했다.

"남은 생애도 역사를 변혁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참된 문학의 길을 걸어 갈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소설을 쓸 것입니다". 작가 조정래는 대구에서의 문학강연을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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