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희칼럼-바람직한 환경운동

10여년 전 일본의 어느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초여름 어느 휴일에 40대의 한 신사가 이 마을을 찾아 왔다. 그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이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후 고향을 떠나 도시로 진출하여 줄곧 도시에서만 살면서 고향에 가보지 못했다. 이제 생활도 넉넉해지고 마음의 여유도 생겨 30여년 만에 고향을 찾은 것이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은 너무도 변해 있었다. 뒷동산과 마을 옆을 흐르는 시냇물은 어릴 때의 추억을 환기시켜 주었으나낭만적인 전원풍경이 사라져버려 저으기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무엇보다도 초여름의 저녁하늘에 불빛을 반짝이며 수없이 날아다니던 개똥벌레를 볼수 없었던 것이 몹시도 아쉬었다.

그는 개똥벌레를 잡기 위하여 깜박이는 불빛을 따라 이리저리 뛰던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리고 중국의 진(晋)나라 때 차윤(車胤)이란 사람이 너무 가난하여 반딧불을 등불로 삼아 공부를 하여 성공을 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듣고 감격했던생각도 떠올랐다.

다시 도시로 돌아온 그는 고향을 떠나온 친구들에게 고향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여기에서 그들은 고향마을에 다시 반딧불을 보게 할 수는 없을까 하고 논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출향인사를 중심으로 '반딧불을 지키는 모임'이란 조그마한 모임을구성하기에 이르렀다.

회원들은 전문가를 찾아서 마을 옆 냇가에 개똥벌레의 입식을 의뢰하고 그 주변에 논밭을 경작하는 농가를 찾아다니며 그 일대에는농약을 사용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그로 인한 수확감소는 보상해 주기로 약속했다. 물론 일체의 경비는 회원들이 출연하는 회비로 충당하였다.

개똥벌레의 입식이 성고안 이듬해 여름 회원들은 이 고향마을에서 '반딧불을 감상하는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는 마을 농민들은 물론, 이 소문을 들은 먼 동네의 사람들까지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들은 공중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을 바라보며 동심으로 돌아가 반딧불에 대한 동요를 부르면서 손뼉치며 환호를 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적은 부분이나마 고향마을을 옛 모습으로 복원한데 대한 성취감과 자부심으로 마음이 뿌듯하였다.이후 '반딧불을 지키는 모임'은 매년 이 행사를 계속하게 되었고 환경보전운동을 확신시켜 나갔다고 한다. 또다른 지역에도 이러한 운동이 확산되어 갔다고 한다.

오늘날 환경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환경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확산되고 있고 사회 각 분야에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이러한 활동에는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기업·일반주민·환경단체 등이 주체가 되어 참여하고 있다. 그중 각종 환경단체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적 조직의 대극에 위치하여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앞에서 본 일본의 예와 같이 국민 속에서 자주적으로 일어난 풀뿌리 활동의 활성화가가장 바람직스럽다. 즉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경영층에서 하향식으로 전개하는 환경운동보다는 국민의 자발적인 상향식 운동이 훨씬 효과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독일과 같은 선진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대표적인 환경단체의 하나인 독일자연보호연합(BUND)의 초창기 운동은 주민들과친숙한 숲이나 강, 특정한 동식물이 있는 마을, 즉 지역에 뿌리를 둔 자발적인 운동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은 너무 '대항형' '항의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환경의 피해를 받는 지역주민들의 대응은 그런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의 훌륭한 업적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댐이나 골프장 등의 건설을 반대하기위하여 머리에 띠를 두르고 주먹을 쳐들면서 '결사반대'을 외치는 것이 환경운동의 충실한 모습인양 비쳐지는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환경 위기에 대응하여 환경친화적인 사회로의 전환을 위하여 각양각색의 다양한 유형의 환경운동이 전개되는 것은 찬성할 일이다. 그러나 대규모의 전문적인 환경단체의 하향식 집단적인 환경운동 못지 않게 적은 규모나마 자발적이고 순수한 환경운동이 전국 곳곳에서조용히 전개되는 것이 더욱 값진 운동이라는 생각이다.

전 대구시장·영광학원이사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