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가 태양이라면 나는 하나의 자그만 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 말은 현대의 성자라고까지 칭송받는 슈바이처가 한 말이다. 그는 괴테상을 수상하면서 "아프리카의 물과 원시림 속에서 나는 매일 괴테와 대화하였다"고 고백하였다.
한국에서는 문학가로, '파우스트'와'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저자로만 알려져 있는 괴테는 실은 법률가, 정치인, 화가, 자연과학자로 한 인간이기를 넘어 한 문화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를 통해 서양문화사를 이해할 수 있고, 그가 말하지 아니한 것이 없어 전세계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괴테 연구가와 애호가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독문학자들로 구성된 괴테학회가 있고, 괴테를 사랑하는 모임(괴테 애호가협회)도 있다.
나도 초등학교 때 괴테를 어린이 위인전기로 알게 됐고, 대학시절에 파우스트를 읽은 후 지금까지도 괴테를 좋아한다. 그래서 괴테애호가협회에 가입하여 발표하기도 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괴테생가와 바이마르의 괴테가 살던 집과 무덤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진실로 괴테는 인간중의 인간이라 할 만큼 항상 싱그런 삶의 활력소를 제공해준다.
그런데 최근 나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은 바로 이웃나라 일본에서였다. 동경에 학술회의 차 간 길에 괴테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달려가 본 것이다. 일본인도 아닌 독일인의 기념관이 동경에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을 만든 사람의 헌신적 노력이다.
주인공 고가와(粉川忠)씨는 원래 양조(釀造)기계 제작 업자였는데, 고교 시절에 읽은 괴테의 매력에 끌려 전재산을 바쳐 60년대부터 괴테에 관한 자료를 모아 이 기념관을 1988년에 개관하였다.
여기에는 단행본 5만권, 잡지 2만권, 기타 자료 15만점이 소장되어 있다. 독일어 괴테전집이 78종이나 되고 괴테 자신이 가졌던 4종류의 전집도 수집되고, 괴테의 원고, 일기, 편지, 그림 등 희귀한 자료들이 놀랄만큼 풍부하게 수집되어 있었다.
이 기념관에 들어가는 길도 Goethe Street라고 부르고 있다. 고가와씨는 이 일을 하면서'자계구행'(自戒九行)이라 하여 ①모두 자력(自力)으로 한다. ②남에게 경제지원을 받지 않는다. ③자유를 지키기 위해 세인(世人)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 ④사재(私財)를 갖지 않는다. ⑤오락을 하지 않는다. ⑥자기육성(育成)은 사업을 통하여 하지 않는다. ⑦행동은 태양처럼 당당히 한다. ⑧죽음의 직전까지 일한다. ⑨승부는 내 생애가 끝난 21세기에 맡긴다 라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헌신적 노력이 결실을 거두어 독일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고 1989년에 작고하였지만 아들이 관장직을 이어 오늘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예를 말하는 이유는 한 인간이 국적도 다른 인간을 사랑하여 정열을 바쳐 자료를 수집하고 애호하는 것이 인물연구의 저력이 될뿐 아니라 문화국가의 초석을 이룬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주변에는 아직도 해야할 일이 산적해 있다. 조상의 자료와 자신의 문서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하는데 남을 생각할 수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국적을 초월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문화발전의 힘이 생기는 것이다.
위대한 일은 국가나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서 출발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양인들은 이 신념을 위해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아니하고 재단(財團)이나 자선기관에 기증한다. 우리가 문화국가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정부의 예산만 갖고 문화사업을 하기는 어디서나 힘들다.
기념관만 선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속에 내실을 수준 높게 유지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튼 동경의 괴테기념관은 우리보다 한 수 앞선 문화국가의 면모를 보여주며, 그것이 문화를 사랑하는 한 기업인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최종고 서울대 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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