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있다. 겉이 아름다워야 속도 좋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속담은 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성형 중독사회의 핵심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잘 생겼다는 말을 듣고 기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서양에도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아름다움의 추구는 인간의 공통적인 속성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생각에 아무리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요즈음 우리 사회 전체를 감염시키고 있는 '성형 중독증'은 병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빛 좋은 개살구'라는 다른 속담을 끌어다가 겉보다는 속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도 보기에는 그럴듯하나 실속이 없는 것이 여전히 많겠지만 현대인들에게는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이미지'가 소위 말하는 '인격'보다 더욱 중요해졌다는 사실을 나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서도 겉보다 속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시대를 이겨내지 못하는 병일 것이다.
내가 외모 중독증을 사회 병리적 현상으로 생각하는 까닭은 다른 데 있다. 며칠 전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실업계 여고생의 취업과 관련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취직을 하려면 예뻐야 한다"는 것이었다. 외모 자체가 경쟁력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 상담을 하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화장법을 가르쳐준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빚을 내서라도 좋은 옷을 사 입고 면접장에 나가라는 권유뿐만 아니라 가능하면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예쁘게 보여야 한다는 조언도 한다는 말을 듣고 나의 상식은 금방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변하였다.
나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예쁘지 않고 키 크지 않은 학생은 면접조차 보지 못하는 사회에서 외모에 신경 쓰라는 조언 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최근에 행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 나라 20대 여성 10명 중 1명은 성형수술을 한 경험이 있고, 35%는 성형수술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청소년들의 외모 지상주의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여중생의 약 40%, 여고생의 71.6%가 성형수술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남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성형 중독증을 여성만의 문제로 매도하던 남성 중심적 편견은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모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이라고 확신하며, 직장인 10명 가운데 9명은 성형수술이 실제로 성격이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외모 가꾸기는 더 이상 단순한 멋이나 치장이 아니라 생활의 필수 요소가 된 것이다.
이 사회가 여전히 남성 중심사회라면, 실력은 둘째고 여자는 뭐니뭐니해도 얼굴이 예뻐야 한다는 남성들의 가부장적 가치관이 복수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자신들은 외모보다는 실력을 더 중요시한다고 거드름 피우던 남성들도 이제는 외모 가꾸기에 매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대통령 후보마저 주름살 없는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하여 보톡스를 맞았다고 하니 이 사회는 분명 외모 중심 사회이다.
모든 것을 외모로 판단하는 이 사회의 성형 중독증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생각해 보니 속과 겉을 구분하여 자신들은 실속을 챙기면서 여성들에게만 외모 지상주의를 뒤집어씌우는 남성들의 가부장적 가치관이 원인이었다. 실력 있는 사람들을 배척하는데 '실력보다 얼굴이 예뻐야 한다'는 말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치유법은 오히려 간단하다. 속과 겉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 실력이 있는데도 실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병이지만, 실력 없는 사람이 실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더욱 중한 병이다. 실력 있어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도 실력 있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이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그렇게 보이도록 치장하기에 바쁜 대선 후보자들 중에서 실력을 갖춘 진정한 지도자를 가려내는 것이 외모 중독증을 치유할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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