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젠 애완견 없인 못살아요"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늘면서 마찰도 잦아지고 있다. 앞산공원까지 '개 산책 금지'라는 팻말을 내 걸 정도이고, 아파트에서는 아예 사육 금지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소리도 높다.

그러나 도시 생활이 삭막해지고 인간 소외가 극심해지면서 사람보다는 개를 식구로 생각하고 함께 사는 사람들이 늘었다. "사람은 배신하지만 개는 결코 나를 잊지 않더라"고 장담하는 사람들도 적잖다.

전직 드라마 음악감독인 권태종(62.대구 범어동)씨에게 애완견 '서니'는 장성해 떠난 자녀들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귀한 식구이다. 3년 전 눈만 겨우 뜬 이 멕시코산 치와와를 '입양'한 권씨는 서니가 너무 어리고 삐치기 일쑤여서 '늙어서 무슨 고생이냐' 싶은 생각에 애견 가게에 되데려다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서니 덕분에 살 맛이 난다고 했다. 외출에서 돌아올 때 꼬리치며 앞발로 바둥바둥거리는 모습에서 허전하고 적적함이 싹 가신다는 것. 추위를 잘 타는 서니를 위해 실내 온도를 항상 20℃로 유지하고 주말 등산 때도 동반한다. 뿐만 아니라 술냄새를 싫어하는 서니에 맞추느라 그렇게 좋아하던 술까지 거의 끊었다. "늙어서 시집살이 한다"고 하면서도 권씨의 얼굴은 환했다.

이재형(28) 신희주(26.대구 대명동)씨 맞벌이 부부에겐 2세 된 18㎏짜리 '스판'이 친자식 못잖게 소중하다. 눈치 없이 침실의 부부 사이에 끼어들기 일쑤지만 온순하고 한번 본 사람은 잊지 않을 만큼 기억력이 비상한 것.

이씨 부부는 개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작년 6월 무심코 지나치던 애완견 가게에서 스판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스판도 집에 오자마자 전부터 알던 집인 양 자연스레 똥오줌을 스스로 가렸다.

'입양' 두 달만에 스판이 눈병을 앓으면서 사이가 더 가까워졌다. 눈이 퉁퉁 붓고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스판을 본 부부는 깜짝 놀라 들쳐업고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렸고 곧바로 수술이 시작됐다.

"수술 받는 동안 자식 이상의 감정이 오더라고요. 핏줄이 당기는 마음이 그럴까요?" 그 뒤 집 근처에 사무실이 있는 이씨는 낮에 아무리 바빠도 하루 두 번은 집에 들른다. 스판에게 점심과 우유를 주기 위한 것.부부싸움이 있으면 더 슬퍼하는 쪽에 가서 애교를 떨 정도로 스판이 영리하다는 이들 부부는 "스판 덕에 가정 분위기가 훨씬 밝아졌다"며 '복덩이'라고 했다.

박재현(61.대구 입석동)씨 가족은 무려 9마리를 기르고 있다. 1995년 태어난 치와와 '깐돌이', 우연히 얻은 요크셔테리어 '로키', 잡종견 '검둥이', 팔려갈 처지가 안쓰러워 안고 온 달마시안종 '달마', 개 좋아하는 걸 알고 이웃이 준 누렁이 등 5마리에다 지난 8월 말 달마와 누렁이가 일을 저질러 새끼 4마리를 낳은 것.

박씨의 가족 5명은 그래서 개 뒷바라지에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아내(56)는 식사, 큰딸 경연(30)씨와 막내 창우(21)씨는 목욕, 둘째 창범(27)씨는 산책 등 업무를 나눴다. 가족 중 누가 귀가하면 더 사랑 받으려고 개 5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가 결국엔 벌이고 마는 싸움을 말리는 것도 진땀을 빼는 일.

하지만 박씨 가족 누구도 개를 원망하지 않는다. 지난 8월 달마가 새끼를 낳을 땐 아내가 미역국까지 끊여 먹이는 정성을 보였다. 지금도 개들에겐 수돗물을 그냥 먹이는 법이 없다. 꼭 정수해 주는 것. 특히 깐돌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막내 창우씨가 야단이라도 맞을라치면 상대에게 마구 짖어 대 인기가 대단하다.

이들 가족은 깐돌이의 엄마 '나래'가 1995년 병사했을 때 받았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때 우울에 빠진 박씨는 입에 대지 못하던 술까지 마셨고, 장마철에는 나래의 무덤이 떠내려 갈까 봐 온 가족이 밤새 잠을 설치기도 했다.

박씨 가족은 어떻게 이다지 개를 좋아하는 것일까? "개는 배신할 줄 모르고 사랑을 쏟는 만큼 주인을 따르는 정직한 식구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