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대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연 그런 시절도 있었나" 하는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갖게된다. 그때, 대구 외곽의 주민들은 아침이면 소달구지나 지게를 지고 시내에 들어와 똥을 사갔다고 한다. 인분이 거름으로 요긴하게 쓰이던 시대이니 똥도 값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대구 외곽이래야 지금의 평리동이나 성당동, 대명동, 범어동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50년대 들어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똥을 파는 게 아니라 공짜로 가져가게 하는 정도였다.
▲그 시대, 대구의 도로 사정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2차선 도로가 고작이었고, 10여명이 타는 합승이 간간이 거리를 누볐을 뿐이다. 그래서 거미줄처럼 엮인 골목들이 교통 및 문화의 장으로 톡톡한 역할을 했다. 구리무(크림) 장사에서 갈치 장사, 엿 장사, 떡 장사, 튀밥 장사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가정용 물산(物産)들이 골목을 오갔다. 골목에 내놓은 평상(平床)은 어른들의 휴식처나 오락장 역할을 했다. 골목은 또한 어린이들의 놀이공간이기도 했다. 구슬치기, 비석 치기, 자치기에서 가이생 등의 모든 놀이들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골목은 전 연령층 공용의 다용도 공간이었던 것이다.
▲외국에서는 골목이 관광상품으로 개발된 예가 많다. 구 시가지나 전통가옥촌 형태로 보존된 골목길은 그 지역의 문화를 알리는 데 한 몫을 한다.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의 감라스탄이 그런 예다. 고가(古家)들이 즐비한 이곳 좁은 골목길은 관광객들을 수 백년 전 어느 날로 되돌려놓는다. 이웃 덴마크에도 옛 골목이나 가옥을 살려 관광 자원화 한 경우를 곳곳에서 보게된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대구에서 '골목문화 살리기'에 나선 것은 참 잘한 일로 생각된다. 대구문화자원봉사단 골목문화팀은 최근 △100년사 골목 △저잣거리 △삶과 문화가 있는 거리 등 3곳을 문화자원으로 발굴했다. 100년사 골목은 진골목, 약전골목, 성밖골목, 뽕나무골목 등을, 저잣거리는 신발/오토바이골목, 돼지/함석골목 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골목문화팀은 대봉동, 남산동, 비산동 등의 '골목 문화지도 그리기'와 '계산동 역사지대' 등의 신규사업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골목문화 사업은 변변한 볼거리가 없는 대구에 명소들을 추가하는 의미가 있다. 재개발 등으로 멸실 위기에 있는 대구의 과거사를 보존하는 기능도 겸하게 된다. 또 '숨어 있는 우리 것'을 재조명함으로써 향토사랑에 대한 관심을 키워줄 것으로 기대된다. 내년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각종 국제행사에서 대구를 알리는 도우미 역할도 톡톡히 하게 될 전망이다. 일석다조(一石多鳥)가 아닐 수 없다. 골목문화 사업이 지역사 복원과 대구 알리기의 새로운 출발점이 돼주기를 기원한다.
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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