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개인파산제 부작용 조짐

법원의 개인 파산 적극 수용 분위기에다 개인 워크아웃제 도입, 도산법상 개인 회생제도 마련 등 채무자를 위한 구제책이 잇따르는 가운데, 일부 채무자들 사이에서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빚을 갚지 않으려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 나타나 우려를 사고 있다.

대구지법 파산부에 따르면 개인 파산과 관련해서는 문의 전화가 하루 30~40통씩 걸려오고 있으며, 법원에 찾아와 문의하는 사람도 하루 10여명에 이른다. 한 관계자는 "사업 실패나 카드빚·보증문제 등으로 인한 불가피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도박이나 사치성 소비 등 원인으로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일도 있다"며, "특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인파산 신청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했으나 요즘은 신청자 중 상당수가 납세자의 권리로 여기는지 표정도 당당하다"고 전했다.

지난 1일부터 접수가 시작된 '개인워크아웃'에 대한 문의 전화도 금융기관에 잇따르고 있다. 은행 관계자들은 "재산이 있거나 도박빚 등 이 제도의 구제 대상이 아닌 경우에도 빚을 갚지 않을 수 없느냐는 전화를 걸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들어 유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신용불량자 클럽' '전국 신용대책위원회' 등 갖가지 커뮤니티(동호회)가 등장해 빚을 안갚을 방법에 관한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있기도 하다. ㄷ포털사이트엔 약 30개의 채무자 모임이 있고 회원 수가 1만여명에 이르며, 90%가 20~30대 초반인 회원들이 커뮤니티마다 하루 평균 50여개의 새로운 글을 올리고 있다.

글 중 상당수는 "무조건 버티면 이자나 원금을 감면받을 수 있다" "돈 될만한 건 다 빼돌려야 한다" "금감원이나 소비자보호원 등에 무조건 민원을 제기하면 된다"는 등 막무가내식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법원 등은 이런 풍조에 엄격히 대응, 대구지법 파산부는 올들어 9월 말까지 4건의 개인파산 신청을 기각했다고 4일 밝혔다. ㅇ(54)씨는 농기계·비료 구입에다 교통사고까지 당해 6천만원 상당의 빚을 져 갚을 길이 없다며 개인파산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본인 소유의 아파트가 있는데다 50대여서 노동력이 있는 만큼 빚을 갚는 게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며 최근 기각했다.

법원의 엄격한 태도 때문에 개인파산이 선고돼도 빚을 탕감받지 못하는 '불량 파산자'도 발생하고 있다. 신용카드를 빌려줬다가 친구가 4천만원의 카드빚을 갚지 못하는 바람에 개인파산을 선고받은 ㅇ(63)씨는 "친구가 카드빚을 갚지 않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카드분실 신고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면책 신청을 기각당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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