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이야기-컬렉터

컬렉터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뭘까?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쉬운 말인 것 같지만 아주 어려운 요건이다. 어느 구석에 그림이 처박혀 있더라도 한눈에 딱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엄청난 운(運)도 따라야 한다. 좋은 그림의 주인은 따로 있는 법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10년전쯤 40대 화가가 우연찮은 장소에서 횡재할 뻔한 얘기다. 그는 동대구역 인근 다방에 우연히 갔다 벽에 걸려있는낡고 작은 그림 한점을 보게 됐다. 얼핏보니 이중섭의 그림이었다. 아무리 구석진 다방이라 하더라도 귀한 그림이 어떻게 걸려 있을 수 있나 싶어 몇차례 봐도 이중섭의 진품이 맞았다.

여주인을 불러 그림의 내력을 물어보니 몇차례 다방 주인이 바뀌었는데도 그 자리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아마 10년 넘게 억대가 넘는그림이 아무도 모른 채 방치돼 있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는 여주인에게 (이중섭의 그림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은 채)넌지시 몇십만원을 제시하고그림을 살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여주인은 눈치가 있는 사람이었던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얼마후 그가 다시 다방에 갔는데 그 그림은 그 자리에서 없어졌다고 한다. 그후 그는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서 안타까움을 나태내곤 한다. "그때 그림을 사려 하지말고 아예 다방을 인수했더라면 꽤 돈을 만졌을 텐데…".에피소드 둘. 사업을 하는 한 컬렉터는 평소 알고 지내던 고미술상을 찾았다. 우연히 사전류를 잡고 책장을 넘기니 2호 크기의 자그마한 그림 한점이 바닥에 떨어졌다.

큰 물건임을 알아본 그는 속셈을 감추려고 주인에게 책값부터 물었다. "5만원 내슈" "되게 비싸네! 그럼 이 '종이'는?" 주인은 "이보시오! 종이는 무슨… 그림 아뇨?"라면서 "책은 두께로 값이 나가지만 그림은 그것과 상관없이 치는 거요…. 4만원은 받아야겠네"라고 점찮게훈수했다.

그는 두말없이 사전과 그림값으로 9만원을 얼른 내고 꽁지빠지게 뛰어나왔다. 전문가의 감정을 받아보니 이중섭의 진품이 틀림없었다.(손철주의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에서)

괜찮은 작품은 그냥 들어오는게 아니다. 안목은 기본이고 지독한 행운이 따라줘야 하는 셈이다. 얼마전 한 컬렉터가 본사 문화부에 전화를 걸어 '실제로 컬렉터가 대박을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충고를 해주셨다. 정확한 지적이다. 하지만 드물게 가끔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신문에 나는 것이 아닐까.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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