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창석칼럼-가장 행복한 학생

요즘은 캠퍼스 커플이며, 사내 커플들이 많다. 더구나 캠퍼스 커플임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시대에 돌입했다. 교정이나 강의실에서 유난히 티를 내는 한쌍의 학생들을 볼 때마다, 늘 떠오르는 아름다운 모습이 하나 있다. 독일에서 유학할 때 만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취미를 가졌던 캠퍼스 커플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제일 앞줄에 앉아서 강의를 들었다. 물론 교수님의 입을 바라보며 한마디라도 더 정확하게 알아듣기 위해서였다. 학생들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대개 뒷줄을 선호하다 보니, 앞줄에는 늘 나 혼자 앉았다.

그러던 어느 학기에 옆자리에 특이한 커플이 앉기 시작했다. 둘 다 일흔이 넘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가끔 필기를 하다가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서로 손을 꼬옥 잡는 것을 보고, 커플인 줄 알게 되었다. 다음 학기에도 또 그 다음에도 우리 셋은 늘 제일 앞줄에 앉아서 함께 강의를 들었다.

강의를 듣는 태도로 보아서 그냥 취미로 대학에 다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부부는 도대체 어떤 사연으로, 아니면 어떤 목적으로 난해하기로 소문난 교수의 철학강의를 듣는 것일까? 어느 정도 친해졌을 때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왜 그 나이에 철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노부부의 대답은 대충 이러했다.

그들은 부부가 다 일선에서 은퇴한 의사였다. 또한 그들은 둘 다 스스로 원해서 의사가 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독일이 세계 2차 대전에서 패망하고 어려운 시기에 그들은 대학을 가게 되었고, 둘 다 고등학교에서 수재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부모는 안정적 직업이 될 수 있는 의사의 길을 강권했고, 결국 그들은 의사의 일생을 살았다. 똑똑한 자녀를 둔 우리나라 부모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노부부가 원래 하고 싶었던 공부는 철학이었다. 의대를 다닐 때에도 철학 강의실을 기웃거리다가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부모가 원하던 의사의 길을 마쳤으니, 나머지 인생이라도 원래의 삶을 살고 싶어서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학생 기숙사같이 꾸민 조그만 각자의 방에서 일어나, 함께 강의를 듣고, 함께 도서관을 찾고, 그리고 저녁이면 학교 앞 맥주집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토론을 벌였다. 그들은 유명한 캠퍼스 커플이었으며, 진정한 학생들이었다. 나는 주저없이 당신들은 이 대학에서 "가장 행복한 학생들"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의외로 노부부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러면서 가장 행복한 학생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공부를 하는 당신이고, 자기들은 "가장 행복한 취미"를 가진 사람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눈은 회한에 젖어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역사상 가장 어려운 책 중의 하나인 '형이상학'을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알기를 원한다". 그러나 어떤 분야를 알고 싶은가는 개인의 흥미와 선택에 달려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생은 유랑이며, 그것도 알고 싶은 것을 찾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나는 유랑이다. 알고 싶은 것을 알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거역하는 것이다.

서양 최초의 대학생들에게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황제 프리드리히 I세의 칙령도 학문하는 자들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다. 학문을 사랑하여 유랑하는 학생들을 불쌍히 여겨서 수많은 면책특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학문의 자유는 유랑의 자유를 말하며, 유랑의 자유는 결국 공부할 분야와 도시 그리고 스승을 선택할 자유를 말한다. 이러한 선택의 자유를 막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말살하는 것이다.

이제 수학능력시험이 코앞에 닥쳤고, 수많은 수험생들이 학교나 전공을 선택할 때가 되었다. 그들의 선택이 돈 앞에서, 부모의 강압 앞에서 그리고 장밋빛 미래 앞에서 자유롭기를 기대해 본다. 나아가 출신 고등학교의 권유 아닌 권유 앞에서, 일국의 정책 앞에서, 21세기형 구복신앙의 기원이나 학문적 유행 앞에서마저도 자유롭기를 기대해 본다. 학문의 선택은 인간의 본성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가톨릭대 교수.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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