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능력은 한 나라의 기술수준을 가늠케 하는 바로미터다. 세계 최장·최고·최대의 시설물을 만들기 위해서는나름대로의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기네스 북에 나타나는 세계 터널기록들을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그런 기술력을 짐작할 수 있다.
철도 터널의 경우, 일본 쓰가루 해협의 53.85㎞가 세계 최장이다. 해저 100m 깊이에 건설된 것이다. 지하철터널은 모스크바 것이 37.9㎞로 가장 길고, 차도터널은 스위스의 16.32㎞가 세계 기록이다. 지하철 1개 노선의 길이가 10~30㎞ 정도니 이들 터널은 노선 한 두 개를 겹친 길이와 맞먹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네스 북에 올릴만한 대형 시설물이 쉽게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고대의 천리장성정도가 최고 시설물이 아닐까싶다. 우리 역사에는 두 개의 장성(長城)이 있었다. 하나는 7세기 중엽 고구려 말기 때건설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11세기 초 고려가 건설한 것이다. 고구려 장성은 농안(農安)~대련(大連)의 만주 지역에, 고려 장성은 압록강~의주~개천~영흥의 한반도 최북단에 건설됐다. 고구려 장성은 연개소문이 깊이 관여한 공사로, 완공에 16년이 걸렸다고 한다.
대구에도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건설사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북이 건설기록으로 말이다. 대구 도심의 반월당 지하공간 개발사업이 그것이다. 함께 붙어 있는 봉산 6거리 개발사업도 뭉쳐서 생각하는 것이 맞겠다.
반월당 사업은 신한은행~적십자병원 간 480m 길이고, 봉산 6거리 사업은 신한은행~봉산 6거리 간 366m 길이다. 반월당 공사는 96년 11월 착공(봉산 6거리는 IMF 사태로 5년 지연)해서 2004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합쳐서 846m의 지하공간 개발을 위해 장장 8년 공사를 벌인다는 말이다. 그것도 예상 공기가 지켜질 때의 이야기다.
8년이 도무지 어떤 기간인가. 그 옛날 천리장성의 절반을 쌓을 수 있는 기간이다. 지하철공사 전체를 끝내고도 남을기간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은 9.54㎞를 건설하는 데 3년4개월이 걸렸다. 부산 지하철 1호선은 16㎞에 4년 1개월, 2호선은22.4㎞에 7년이 소요됐다. 가까이 대구 1호선도 28.3㎞에 6년 6개월이 걸리는 데 그쳤다.
구조물이 좀 복잡하다 하더라도 수백m의 지하공간 공사가 8년씩이나 걸려야 할 이유가 없다. 대구 사람들의 인내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벌이는 공사판이 아니라면.... 대구 지하철 당국에서는 공사의 지연 이유를 국비지원이 늦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년 정도 허송됐다는 것이다. 또 지하철 2호선이 완공되지 않으면 지하상가의 용도가 없으니 공사를 서둘 이유도 없다는 천연덕스런 답변을 곁들인다. 2004년 12월 본 공사 공기에 맞추겠다는 소리다. 두류 네거리 지하공간개발 공사도 마찬가지다.
국비지원이 안 돼 공사가 늦는다는 해명은 참으로 한가하게 들린다. 지원을 설득하고, 관철시키는 것이 대구시의 할 일이다.공사지연은 대구시의 행정무능을 스스로 노출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반월당이 도무지 어떤 곳인가. 하루 수십만 대의 차량이오가는 대구 교통의 심장부다. 그 한가운데를 타고 앉아 시민들에게 엄청난 불편을 끼치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는가. 복공판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관할 밖이라는 소리인가.
시민들은 어제도, 오늘도 항상 조마조마하게 복공판을 통과하고 있다. 상인동 가스참사가 있은 후 가스용접기를 들고 설치는 공사장 인부들만 보면 악몽이 되살아난다. 머리 위로 오락가락 하는 건설자재들은 뒷덜미를 섬뜩하게 만든다. 덜컹거리는 복공판이 언제 입을벌릴지 조바심하며 차를 몬다. 주변상가들의 불만도 극에 달해 있다. 영업 피해가 5년, 6년, 기약 없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 시장은 이런 현실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