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와 함께-전문가 "인내부족"우려-'인연이 화근으로…'

미국의 유명 인사와 멱살잡이 하는 국내인은 없다. 예멘에 아무리 큰 부자가 있어도 대구에 앉아 그를 시기하는 경우는 없고 그런 사람이 있는지 관심조차 없기 십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이웃과는 싸움을 벌이고, 4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파하며, 바로 자신의 가족끼리 살상을 저지르기까지 한다.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지만, 그 소중함을 모르고 악연을 쌓아가는 것이다. 범어동 일가족 피살 사건이 터지자 적잖은 시민들이 안타깝다는 전화를 매일신문사로 해 왔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들은 지금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택시기사 ㅊ씨는 지난달 말 회사원 ㅇ씨를 태웠다가 세상 사는 이야기로 말벗이 됐지만 이내 싸움을 벌였다. 사소한 말이 빌미가 돼 다툼이 벌어졌고 화가 난 윤씨는 택시를 발로 걷어찼다가 주먹을 교환해야 했다. 조사 경찰관은 "안 만났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사이에 악연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직장인 ㅇ씨는 몇년간 사귀어 온 애인과 결국엔 원한을 쌓았다. 대학 후배 ㄱ씨를 매일 보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 정도였지만 ㄱ씨가 직장 생활을 시작하자 다른 남자와 사귀지 않을까 걱정하다 문제가 생긴 것. 결혼까지 생각하던 애인이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때리고 성폭행까지 저질렀다가 경찰 신세를 졌다.

ㅊ씨는 여자친구 ㄱ씨가 만나주지 않는다며 몇달 전부터 다툼을 벌여 오다가 최근엔 흉기까지 휘둘렀다. 5년간의 만남이 무너진 것은 물론이고 이제 전과자로 인생을 망치게 된 것이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시내 하루 발생 사건은 평균 30~40건. 그 대다수가 이웃·가족·친지 사이나 주인-손님, 승객-기사 사이의 사소한 문제로 벌어진다고 했다. 이들은 사랑·이해·용서·화해로써 서로의 잘못을 보듬어 줘야 하는 사이. 그러나 아예 인연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은원도 없었을 바로 이들 사이에서 대부분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상담개발원 손매남 원장은 "우리 사회에 여유가 없어지면서 사랑·용서·화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있다"며, "최근 한 조사에서는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우리나라의 사회적 정신구조가 가장 낙후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손 원장은 "사회적 스트레스는 갈수록 증가하는 반면 그걸 극복케 하는 인내력은 저하되고 있어 순간의 분노를 자제할 수 있는 에고(자아)를 키우는 전문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그 지원 제도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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