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애인경기 5메달 주인공

홍덕호(36.대구 용산동)씨는 최근 폐막된 제8회 아시아태평양 장애인 체육경기대회에서 메달을 휩쓸다시피 했다. 100m 휠체어달리기에서는 금메달, 400m에서는 동메달, 200m.800m.400m 이어달리기에서는 은메달. 5개의 메달을 따낸 셈이었다. 육상 부문엔 우리나라 선수 12명이 출전했지만 금메달리스트로는 홍씨가 유일했다.

홍씨는 휠체어 달리기를 통해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낀다고 했다. 취업은 물론 학업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이 땅 장애인들의 삶. 그는 휠체어 달리기가 없었다면 무수한 장애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삶을 포기했을지 모른다"고 했다.

'장애'는 홍씨에게 도둑같이 찾아왔다고 했다. 생후 2년을 갓넘겼을 무렵 소아마비를 앓은 것. 하반신은 갈수록 더 왜소해졌다.게다가 경찰관이던 아버지가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했다.

2남6녀 형제들의 끼니조차 없었다. 어머니는 홍씨에게 가장 미안해했다. 성찮은 아들에게 치료는 커녕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기 때문. 홍씨는 배 고프던 시절의 '국수 사건'을 다시 꺼냈다. 어머니가 국수한 다발을 외상으로 가져와 10명의 식구들이 젓가락 다툼을 벌였던 일이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자 어머니는 '노가다'로 나섰습니다. 어머니는 노동판에서 점심 식사로 받은 빵을 먹지 않고 퇴근 후 항상 저한테 챙겨다 주셨습니다. 어린 저는 빵을 매일 기다렸습니다.

어머니가 하루 종일 물만 마시고 일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홍씨는 어렵게 컸지만 부모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부모님의 사랑이 오늘의 자신을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오히려 고마와했다.

홍씨는 학교 구경을 16살이나 돼서야 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다 몸까지 불편한 그에게 학교는 상상하는 것조차 사치였기 때문이다."그래도 배워야 살 수 있다고 깨달아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20살 때 들어간 중학교에서 '휠체어 운동'을 시작했지요".

휠체어 운동과의 인연은 우연히 찾아 왔다.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울며 겨자먹기로 나가야 했던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당시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한 것. 주위 사람들은 "숨은 보배가 나타났다"고 입을 딱 벌렸다.

그리고 홍씨는 자신에게 엄청난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됐다. 전체 체력은 약하지만 단거리 달리기에 필수 요소인 순발력이 뛰어난 것이 그것.

1986년 인도네시아 아태 장애인 경기대회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처녀출전 때는 노메달. 1988년 서울 장애인올림픽 때는은메달.동메달을 따 연금도 받게 됐다.

복(福)은 한꺼번에 들어왔다. 어렵게 살던 부모가 식당업에 성공해 형편이 괜찮아진 것. 홍씨는 대학공부를 하고싶어졌고 그래서 운동을 10여년간 쉬었다.

홍씨가 다시 트랙을 달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지난 아태 대회는 쉬었던 몸을 다시 시험하는 무대였다. 지금 홍씨의 목표는 장애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자신 있다고 했다. "이왕 이 길로 나선 이상 목표를 이뤄야죠. 달리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을 생각하고 다시 뜁니다".

홍씨는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너무 아쉽다고 했다. 이번 아태 대회 때 역시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출전해야 했다.친구로부터 경기용 휠체어의 축을 빌리고 바퀴는 후배 것을 빌렸다.

"외국엔 장애인 스포츠 실업팀까지 있습니다. 유명한 자동차 회사인 벤츠도 장애인 스포츠단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비장애인들도 열심히 장애인들을 응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장애인 스포츠에어울리는 딱 한마디가 있습니다. '찬밥'이지요".

메달을 따고 나면 주위 사람들이 묻는다고 했다. "너 메달도 땄고 한데 이젠 뭐 할래?" 홍씨는 답할 말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계속 달릴 생각이다.달리면서 삶의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달걀로 바위를 쳐보겠다는 심정으로 사는 것이 장애인들입니다. 뭘 하려해도 막상 시작하면 되는 것이 없거든요. 외출조차 어려우니까요. 그래도 자꾸 뭔가와 부딪쳐 나가면 희망이 보입니다".

홍씨에게 최근 반가운 소식이 왔다. 내년부터 대구 달서구청 소속 선수로 뛸 수 있게 됐다는 것이었다. 새해부터는 '진짜 스포스 선수'가 되고 준공무원 대우의 안정적인 급여도 받게 된다. 주변 사람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장애인단체를 중심으로 홍씨 후원회를 만들고 있는 것.

홍씨는 프로야구.프로축구 선수에게만 후원 클럽이 있는 게 아니라 마흔을 바라보는 장애인 선수도 '오빠부대'를 몰고 다닐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053)954-0170.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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