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감동'이라고 한다면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얼마만큼 감동의 조건을 갖추고 있을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비롯 민주당 노무현,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후보 등 연말대선의 유력 후보들은 정치 지도자다운 포용과 화해의 넓은 정치를 보여 주고 있을까.
"하다못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국회의원 142명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 이 후보는 얼마전 "집권하면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한 바 있다. 정가에서는 이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적지않은 유권자들의 우려를 감안한 말로 해석했다. 이 후보의 '대쪽같은 원칙주의'를 지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사석에서 만나면 "이 후보가 감동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평가하는데는 주저한다.
포용·화해력의 결핍
돌풍을 일으키며 등장했던 민주당 노 후보는 최근 각종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몰락'상태에 머물고 있다. 노 후보의 측근들은 "정치 개혁의 색깔을 확실히 하지 못한 탓"이란 분석을 하기도 하지만 '포용력 부족'을 이유로 꼽는 이가 적잖다. 노 후보가 아직 재선 국회의원의 신분에 있을 때부터 그의 대통령 가능성을 믿고 도와 온 이강철 조직특보는 '색깔이 다르고 싫어하는 사람과는 말도 제대로 나누지 않는' 노 후보의 결벽증을 아쉬워한다.
국민통합 21의 정 후보는 여론조사결과 엄청난 지지세에도 불구, 현직 국회의원을 끌어 모으는 세 결집에는 아직 실패다. 국민통합 21의 주위를 맴도는 많은 이들은 아직도 정 후보의 대선 이후를 확신하지 못한다.
민주당 노 후보의 측근중 한사람은 "정 후보가 처음부터 국민경선을 요구했으면 노 후보는 꼼짝없이 후보자리를 내 놓아야 했다"고 한다. "노 후보의 지지세가 급속도로 떨어졌을 때도 정 후보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국민경선의 함정을 우려하다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한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로부터 역사관을 비판받아 온 국민통합 21의 강신옥 창당기획단장이 7일 당직을 사퇴했다. 전날 박 대표와 정 후보의 회동에서 자신의 문제가 집중 거론된데다 정 후보 등 당내에서마저 자신의 거취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당직을 던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의 변호를 맡았고 "김재규를 의인으로 본다"고 한 강 전 의원은 '박정희의 딸' 박 대표와 정 후보의 결합에 걸림돌로 지목돼 왔다.
정치개혁은 유권자의 몫
박 대표를 지지하던 이용택 전 의원은 "어머니를 살해한 김정일과는 백년지기를 만난듯 하며 아버지의 살해범 변호인을 문제삼는 박 대표의 행보는 웃기는 짓"이라고 지적한다. '유권자는 아랑곳없는 협량'이라는 거다.
후보단일화 명분을 내세우는 지역출신 민주당 전국구 의원 일부가 보여주는 모습도 찜찜한 구석을 남긴다. 명분을 위해 국회의원 배지를 던질 수는 없을까. 정치개혁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유권자의 몫이다. 그러나 그 몫을 제대로 지키려면 잘 기억해야 한다.
seo123@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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