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序文)부터 톡톡 튄다. "시간을 돈이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기꺼이 시간체크를 한다면, 지금 바로 책을 덮으세요".
영국의 여류 저술가 제이 그리피스는 '시계밖의 시간(당대 펴냄)'을 통해 현대인들이 평소 그렇게 아까워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시간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했다. 그리피스는 먼저 우리들이 시간속에 살아가는 것보다는, 시계에 지나치게 길들어져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고 보니 100년전 우리 조상들만 해도 시계를 전혀 알지 못했고, 알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해가 뜨면 논으로 나가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바로 인간의 몸에는 자연의 시계가 내장돼 있었던 셈이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간은 단선적이고 기계적이며 전지구적인 산업문화의 파생물이라고 규정했다. '24시간 사회' '시간은 돈이다'라는 기존 관념을 거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아가 서구의 문화제국적인 시간과는 확연하게 다른, 인도 뉴질랜드 등 세계 곳곳의 시간묘사 방식과 자연에 뿌리박은 시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간은 돈이다(벤자민 프랭클린)'는 말이 자본주의의 극단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눈에 띈다. 인간들의 시간을 고통스런 노동시간으로 몽땅 채우겠다는 세뇌성 캠페인이라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1999년 조사에서 미국인 10명 중 1명이 새벽 3시에도 일을 하고 있고, 영국인의 55%가 토요일에 일하고 37%가 일요일에도 일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가 발달될수록 그 구성원은 시간의 노예가 되기 쉽다.
현대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느끼는 시간은 확실하게 다르다. 먼저 남성은 10대, 20대, 30대, 40대같은 여러가지 연령대가 있다면, 여성은 단 하나의 연령대만 존재한다. 바로 젊음이다. 또 남성우월사회에서는 남성들은 여성의 시간을 균일화하려 하고, 여성들은 사회적 시스템 미비로 인해 힘이 가장 넘치는 시간에 끔찍한 시간낭비를 할 수밖에 없다.
또 이 책은 속도와 추월에 대해 인간이 굴복할 수밖에 없는 과정, 아우토반 같은 자동차도로와 파시즘의 연관성, 해양과 제국주의문화가 만들어낸 영국의 그리니치 표준시의 천박함 등을 사례로 들면서 시간이란 주제를 더할 수 없이 맛있게 씹고 또 씹는다.
결론적으로 그는 시종일관 인간이 만들어낸 시간과 자연의 시간을 절묘하게 대비시키면서 독자들에게 과연 어느 것이 좋은가 하는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결론이야 뻔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시계라는 고정관념을 부숴버리는 재미있는 책이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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