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더웠던 지난해 7월의 어느 날, 부산 소년의 집 관현악단의 자선 음악회인 '사랑과 나눔의 콘서트'에 출연하기 위해 울산 현대 예술관에서 연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년의 집은 부모를 여의었거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소년들을 위하여 마리아 수녀회에서 설립한 곳으로 김병지 국가대표 골키퍼로 인해 널리 알려져 있다.
처음 만난 그들은 까까머리 소년들로 하나같이 밝고 맑은 눈동자를 초롱거리며, 호기심이 가득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참으로 어려운 여건 속이지만 그들이 안고 있는 악기들은 외로움과 아픔에 희망이란 날개를 달아주는 꿈이기도 했다.
연주장은 대성황이었다. 이해인 수녀의 시 낭송 뒤, 무대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무대 위에서는 지휘자도 없이 연주가 시작되었다.'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라는 찬송가가 시작되자 객석의 숙연함과 함께 내 눈가가 젖어들었다.
이어진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이제껏 들은 그 어떤 세계적인 교향악단보다도 베토벤의 정신을 그대로 나타낸 감동적인 무대였다.베토벤은 가난과 병마와 외로움 속에서도 끊임없는 예술혼으로 불후의 명곡들을 세상에 남겼다.
오랜 귓병으로 청각을 잃는 운명 앞에서도 그는 '전원'과 '합창' 등 교향곡을 작곡했다. 자신의 지휘로 '합창교향곡'을 초연했을 때, 연주 뒤 관중들의 박수소리를 들을 수 없어 한 연주자가 객석으로 그를 돌려주었을 때야 비로소 환호하는 관중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듯 운명 교향곡 제1악장 제1테마의 4음처럼 어떠한 운명이 우리의 삶을 두드릴 지라도 마침내 싸워 이겨내리라는 인간의 강한 의지와 희망이 담긴 베토벤과 소년들이 함께 한 이 날의 연주회는 지금까지도 나의 가슴에 커다란 감동으로 남아있다.
메조소프라노·계명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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