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재, 대규모 인명피해 막을수 없나-건물 크기따른 소방규정 손질을

사람의 생명이 걸린 일에까지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다. 소방 전문가들은 지금 정도의 법적 규제로는 오히려 불감증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대대적인 소방법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크기 아닌 내용 중심 규제를= 법률이 건물 크기에만 매달려 규제를 일원화한 것은 편법건축을 유도하고 화재 대비력을 약화시키는 심각한 허점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비판했다.

대구소방본부 방호과 박석진 담당은 "미국 등 안전선진국은 화재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건물에는 크기에 관계없이 까다로운 소방 법규를 적용하고, 그렇잖은 곳은 상대적으로 규제를 완화한다"고 전했다. 소방기관이 모든 건축물을 검색해 적합한 등급을 부여한 뒤 그 등급에 따라 적절한 소방시설을 갖추도록 한다는 것.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건물 크기에 따라 소방설비 규정을 다르게 함으로써 편법 건물이 활개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뒤늦게 그같은 문제점을 인정, 2년 전부터 '통합적 화재위험 등급'을 마련키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책임보험 의무 가입 대상 확대해야= '바닥면적 3천㎡ 이상의 단란주점·학원·병원·호텔·공연장 등'만 화재 때의 신체배상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현재의 규정때문에 전국 60여만개 음식점·숙박업소(호텔 제외) 중 가입 업소는 1.8%인 1만여개에 불과하다고 손해보험협회가 밝혔다. 대구 경우 8천300여개 다중업소 대부분은 여전히 의무 가입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것.

행정자치부는 뒤늦게 책임보험 의무 가입 대상을 2천㎡ 이상의 일반음식점까지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와 관련해 내부에서조차 범위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행자부 관계자는 관련 업주들의 반발때문에 대대적 확대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해보험협회 이은혁 대리는 "보험 의무가입 대상 역시 면적에 따라 획일적으로 책정해서는 안된다"며, "선진국처럼 화재안전 기준상 위험 판정을 받는 모든 건축물은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화 관리자 관리 강화도 시급 = 한국소방안전협회 연구소 김영근 부장은 "현재의 소방법으로는 방화관리자 운영이 의무화돼 있는 건물에서조차 그 시스템의 충실한 작동을 기대할 수 없게 돼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첫번째 결함은 방화관리자의 건물 상주가 의무화돼 있지 않은 점이다. 외지는 물론 미국에 살더라도 국내 건물의 방화관리자가 될 수 있도록 허용돼 있는 것. 때문에 방화관리는 소방검사 때만 잠시 이뤄질 뿐 평소에는 완전히 내팽개쳐져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안전 선진국에서는 "방화관리자는 건물에 상주해야 한다"고 의무화하고 있다.

두번째 결함은 민형사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방화관리를 떠 맡기는 경우가 많아도 규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세입자는 소방시설이 고장 날 경우 자신의 돈을 들여 책임감 있게 수리하기 어렵고 수시 안전점검 실시권도 없어 자연스레 방화관리에 소홀해지기 쉬운 실정이다.

세번째 결함은 방화관리자에 대한 관리가 부실하다는 점.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 뉴욕주 경우 방화관리자가 되려면 2년 이상의 경력에 2차례에 걸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일본에선 인사권 및 관리감독권을 가진 사람이라야 방화관리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소방안전협회의 교육을 사흘(24시간)만 받으면 누구나 방화관리자가 될 수 있다. 전문적 소방 지식을 갖추기가 불가능토록 돼 있는 것이다.

◇화재 탐지기 설비 규정 강화= "씨랜드(1999년) 예지학원(2001년) 참사 때 자동 화재탐지기는 아무 역할도 못했습니다. 라이터를 갖다 대도 벨이 울리지 않는 화재탐지기가 지금도 수두룩합니다". 화재보험협회 김원철 기획팀장은 화재탐지기 관리 강화 역시 절실하다고 했다. 탐지기 연결선조차 끊겨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

현장 소방대원들은 자동 화재탐지기의 설치 지점도 종전과 다르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센서가 붙어있는 천장에서 불이 나면 빨리 감지되겠지만 다른 지점에서 불이 날 경우 화재가 상당폭 진행된 뒤에야 비상벨이 울리고, 그때는 이미 독가스에 질식돼 쓰러진 뒤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

소방관들은 또 "다중시설 경우 규모와 상관없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토록 법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래엔 독가스 방출 가연성 자재가 마구 사용됨으로써 이런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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