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초고속 통신망 '1천만명 시대'의 그늘-안방이 게임중독 온상으로

게임방을 찾는 청소년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대신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주요 장소가 집으로 바뀌면서 초교생들이 새로 게임 중독자로 빠져드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 가입 폭증이 몰고 온 새로운 현상이다.

◇한산한 게임방 = 수능시험 다음날인 지난 7일 밤 10시 대구 동성로 ㄱPC방. 컴퓨터 화면에 "만 18세 미만 청소년은 게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안내문이 떴다. 하지만 청소년은 아예 눈에 띄지 않았다. 바둑·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성인 2명이 남았을 뿐. 이들도 밤 12시쯤 되자 게임방을 빠져 나갔다. 45대의 컴퓨터는 적막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르바이트 한다는 박모(22)씨는 "아르바이트 시작 석달이 지났지만 청소년은 찾아보기 힘들고 밤 10시를 넘어서면 성인 손님도 보기 힘들다"고 했다. 수능 시험이 끝나 당분간 붐빌 것으로 예상했지만 상황은 마찬가지라는 것.

같은 시간 경북대 주변 10여개 게임방도 마찬가지였다. 한 아르바이트생은 "법규 개정으로 밤 10시가 넘으면 경찰관이 수시로 나와 단속하는 통에 이 주변에선 청소년들 보기가 힘들다"고 했다. 불과 일년 전까지만 해도 게임방에서 숙식하며 미친듯 게임에 몰두하는 10대 '겜족'이 업소마다 1, 2명은 꼭 있었지만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 경북대 북문 ㅇ게임방 앞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오모(50·여)씨 역시 "새벽까지 게임방에 있다가 찾아오는 10대는 거의 볼 수 없다"고 했다.

◇가정 초고속망의 부작용 = 업주들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주택으로까지 일반화된 후 게임방 이용객이 줄었다"고 했다. 국내 초고속 인터넷망 가입자는 서비스 시작 4년만에 최근 1천만명을 돌파했다고 지난 6일 정보통신부가 발표했다.

소위 '성장게임'이 게임 시장을 주도하게 된 것도 게임방 쇠퇴에 한몫했다고 업주들은 분석했다. 게임방 열풍이 불던 1999년엔 팀플레이 하는 스타크래프트류의 게임이 유행해 게임방이 붐볐지만 지금은 '리니지' '바람의 나라' 등 1인 게임이 주류를 이뤄 집에서 혼자 즐길 수 있게 됐다는 것.

그러나 주택 초고속망 보급 일반화는 또다른 부작용을 불러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우군의 경우가 대표적. 오후 1시쯤 학교에서 돌아온 민우(11·초교4년)는 가방을 벗자마자 컴퓨터에 앉는다. 맞벌이 하는 어머니가 차려놓고 간 점심도 거르기 일쑤. 심지어 속셈·태권도 학원도 가지 않는다. 민우의 부모는 버릇을 고치겠다며 한달간 초고속 인터넷 연결을 중단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민우가 식음을 전폐하며 떼를 쓰는 바람에 학원만 절대 빠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다시 게임을 허락했다.

하지만 민우의 게임 중독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자는 줄 알았던 민우가 몰래 일어나 밤 12시가 넘도록 게임에 빠지는 일도 다반사. 어머니 이모(36)씨는 "민우 친구 중에는 게임 아이템을 사려고 아버지 지갑에서 돈을 훔친 경우도 있다"고 했다.

대구 매호초교 오동환(34) 교사는 "6학년을 조사한 결과 한 반 40명 중 10% 이상이 하루 3, 4시간씩 주 5일 이상 게임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한 반에 1, 2명은 잠 자는 것처럼 속인 뒤 자정 이후까지 게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게임방들 대응 분주 = 청소년층 이용이 급감하자 일부 대형 게임방들은 이른바 '작전맨'을 5, 6명 고용해 청소년 이용객을 모으고 있다. 작전맨은 고난위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20대 중반의 '겜족' 1세대들. 특정 직업 없이 개업하는 게임방을 돌며 숙식을 제공받고 5~7일간 청소년들을 불러들여 준다.

또 게임방들 중엔 야간 겜족을 유치키 위해 밤 10시 이후엔 요금을 반으로 할인해 주는 경우도 있다.

이상준·문현구·이창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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