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중국 당대회 여적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는 우리 근대사의 영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한말(韓末) 언론인·독립운동가로 잘 알려진 선생은 역사가로서도 남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역사인식은 민족·민중주의적이며, 영웅(英雄)중심 사관을 드러낸다.

그의 고대사 기술은 역사적 근거를 떠나 후세인들에게 장쾌함을 준다. 상고사(上古史)의 무대를 중국 동북지방과 요서(遼西)지방으로 넓힌 것이라든지 단군·부여·고구려 중심으로 역사를 체계화 한 점이 그러하다. 또 한사군(漢四郡)의 실재를 부인한(또는 한반도 밖에 있었던 것으로) 점도 그 연장선상이다.

▲이런 기백 넘치는 선생에게는 일화도 많다. 중국 망명시절, 북경일보에 논설을 기고했는데, 원고 가운데 토씨 하나를 빠트렸다는 이유로 글 쓰기를 중단한 적이 있다. 신문사 사장이 찾아와 크게 사죄했지만 '한국인에 대한 우월감에서 나온 행동'이라 하여 끝내 집필을 거부했다.

▲단재는 한 살 위의 김규식(金奎植)에게 영어를 배운 적이 있다. 미국 유학파 김규식으로서는 발음을 까다롭게 가르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자 영어선생을 바꿔버렸다. "뜻만 가르쳐 달랬더니 발음으로 까다롭게 군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실, 선생의 영어 발음은 망칙스런 것이었다. '이웃'이란 의미의 네이버(neighbour)를 '네이그흐바우어'로 읽었다.

주변에서 묵음을 발음하지 말라고 가르치면 이렇게 항변했다. "내가 그걸 왜 모르겠소. 그러나 그건 영국인의 어법이니 내가 지킬 필요가 없는 일이오"하는 것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영어를 읽으면서 중간 중간에 "하여슬람"하고 우리말 연결어를 끼워 넣었다.

주변에서 까닭을 묻자 "영어나 한문이나 글은 다 마찬가지"라며 '하여슬람' '하여슬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영어로 난해한 '로마제국 흥망사'를 읽었다고 하니 석학의 재목은 재목이었던가 보다.

▲요즘 열리고 있는 중국 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는 여러 중국 지도자들과 지명을 언론에 등장시키고 있다. 권좌에서 물러나는 장쩌민(江澤民)과 새 지도자로 부상한 후진타오(胡錦濤), 그와 맞서게 될 쩡칭훙(曾慶紅), 그리고 장쑤(江蘇), 타이저우(泰州), 충칭(重慶) 등등. 그런데 한참 익었어야 할 이런 인명·지명들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어와 달리 중국어나 일본어는 우리 한자어 발음이 따로 있다.

그래서 처음 보는 글자라도 한자어로 읽을 수는 있지만, 중국어나 일본어로 발음 할 수는 없다. '증경홍'은 돼도 '쩡칭훙'은 안 된다는 말이다. 현행 표기법이 우리 국민들을 읽기 문맹(文盲)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국민 모두에게 중국어·일본어를 배우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단재가 살아있었다면 이런 표기법을 용납했을까.

박진용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