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론조사, 왕도는 아니다

요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 언론계에 대선후보관련 여론조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신문은 신문대로 방송은 방송대로 저마다 어느 후보의 현재 지지율이 몇%고 며칠 새 얼마나 더 오르고 내렸다는 보도를 경쟁적으로 쏟아낸다.

더구나 언론사 마다 발표와 후보별 지지율이 제각각 다르고 심지어는 순위까지 뒤 죽박죽 뒤바뀌어 나오기도 한다. 자연히 유권자들에게는 후보 선택이나 검증의 객 관적 기준이라기 보다는 혼란스러운 정보가 되고 있다.

여론조사의 당사자들인 후보자들도 남발되는 여론조사에 어쩔수 없이 끌려다니며 신뢰도야 어쨌든 일단은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느정도 순탄하게 진행 되던 정·노 두 후보 진영의 단일화 협상이 어제 오후 갑자기 멈칫거렸다 다시 전 격 수용쪽으로 선회한 것도 경선 조건의 '여론조사' 변수에 대한 이견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후보등록도 안된 시점에서 선거 당락예측을 가늠하는 여론조사의 신뢰도는 얼마만큼이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또 여론조사가 막상 선거 결과에는 어느정도 영향을 끼칠 것인가. 우선 우후죽순처럼 이 신문 저 방송이 시도때도 없 이 계속 내놓는 대선 여론조사의 신뢰도부터 생각해보자.

선거에 관련된 여론조사라면 역시 미국언론이 원조다. 사상 첫 선거여론조사가 실시된 것은 82년전인 1920년이고 유명한 갤럽조사연구소 가 설립된 게 69년전이다.

그처럼 오랜 전통과 전문성을 쌓은 미국의 세계적인 3 대 여론조사기관인 갤럽과 헤리스 양켈로비치 3개 기관도 대선여론조사에서 가끔 엉터리 결과예측을 할때가 있다. 얼마전 노벨상을 받은 카터 대통령과 포드가 맞 붙은 1976년 대선에서 갤럽과 양켈로비치는 카터의 당선 '결과예측'에 실패, 오보 를 낳았다.

우리도 언론사의 선거 여론조사 오보사례는 적지않다. 4·11총선때의 일부 방송사의 출구조사의 완벽한 오보와 87년 노태우 후보가 당선 된 대선때 조·중·동중 모신문사가 '노태우 3위'로 조사보도한 것이 그런 예다.

여론조사 기관이 1백개가 넘고 연평균 600건 이상의 여론조사를 하는 프랑스는 그 러한 부실한 여론조사의 부정확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여론조사위원회'라 는 법정기구를 두고 있다.

위원회는 어떤 여론조사 기관이든 조사결과를 사전 심 의하고 여론조사의 목적과 질문내용, 조사대상지역, 피조사자 수, 조사시기 등을 보고 받으며 심의를 거치지 않으면 언론에 보도할수 없게 하고 있다.

심지어 여론조사의 공정성이 의심될때는 설문조사된 사람의 주소와 이름등 명단을 제출받아 같은 내용, 같은 조사방법으로 재조사할 정도로 엄격하다.

조사시기도 특정후보에게 유리한 시기에 조사된 여론조사 결과는 발표를 금지시킨다. 며칠전 민주당 등 일부 후보진영에서 언론기관들의 여론조사가 일부 조사시기나 설문 질문내용등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시비와 함께 신뢰도에 불만과 의문을 제기 한 것도 프랑스의 여론조사위원회 같은 기구나 제도가 없는 우리의 여론조사 토양 에서는 언제든지 생겨날수 있는 시비거리다.

여론조사 발표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칠것인가에 대해서도 명확한 결론은 나와 있지 않다. 학자들사이에는 후보미결정 유권자나 부동층은 여론조사에서 우세한 것으로 나타 난 후보에게 마음이 더 쏠린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고 반대로 중립적인 부동층은 약자를 도우려는 성향이 있으므로 여론조사에서 뒤지는 후보를 찍게된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도 있다.

전자의 경우를 '밴드웨건(Bandwagon) 효과'(서커스단의 악단 차량을 우르르 따라다니는 것과 같은)라 하고 후자를 '언더독(Underdog) 효과'(싸 움에 져서 축 처진 개를 동정하듯 하는)라 한다.

몇몇 연구결과에 의하면 후보간 의 지지율 격차가 클 경우 언더독 현상이 나타나고 지지율 차이가 미미할때는 밴 드웨건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 실험연구 결과가 맞다면 현재 여론조사를 기 준할때 이회창 후보는 언더독 현상에 의한 노후보의 동정표를 주의해야 하고 정· 노 후보간에는 밴드웨건현상을 유의해볼만 하다.

어쨌든 유행처럼 남발되고 있는 여론조사들이 오보가 될지 그대로 맞아떨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유권자들로서는 경마(競馬) 저널리즘식의 흥미중심의 여론조사 보도에 기웃거릴게 아니라 후보토론회나 간담회·인터뷰기사들을 열심히 관찰하고 듣고 살피며 후보의 자질과 사상과 철학을 읽어내는 그야말로 능동적인 참정권 행사를 해야만 옳은 후보를 뽑을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들쭉날쭉거리는 남의 여론조사가 아니라 유권자인 나 자 신의 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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