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삼성 꿈결같은 랑데부 홈런

6대9로 뒤진 9회말 원아웃 주자1.2루. 대기 타석에 나란히 서 있던 삼성의 마해영이 곧 타석에 들어서는 이승엽에게 "하나 부탁한다"며 엉덩이를 두드렸다. 이승엽은 긴장된, 그러나 결의를 다지는 표정으로 왼타석에 들어섰다. 8회부터 마운드에 나선 LG의 좌완 마무리 이상훈도 지쳤지만 승리의 결의를 다지는 눈빛으로 이승엽을 맞았다.

10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 2회초 LG 최동수의 3점홈런과 2회말 삼성 박한이의 2점홈런이 터지며 초반부터 타격전을 펼친 삼성과 LG는 엎치락뒤치락하다 5대4로 앞서던 삼성이 6회와 8회 각각 3점과 2점을 내주며 패색이 짙어졌다. 삼성 선수들은 8회 1점을 만회하긴 했지만 6회 이후 패배를 예감한 듯 맥없는 플레이를 펼쳤다. 삼성 3루수 김한수는 9회초 마르티네스의 평범한 파울 플라이를 놓치기까지 했다.

대구구장을 가득 메운 1만2천여 관중들이 "이승엽 홈~런"을 외치기 시작했다. 1천여LG 관중들은 숨을 죽였다. 타석에 들어설 때 마다 홈런을 치라는 성원을 받았지만 이승엽은 그때까지 20타수2안타로 극도의 부진을 보이고 있었다. 한국시리즈 내내 욕심이 앞서서인지 성급하게 배트를 휘두르거나 헤드업을 하는 등 타격 감각을 잃어버린 듯 했다. 3루 덕아웃의 삼성 선수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었고 김응룡감독은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상훈의 초구가 스크라이크존을 걸치며 몸 안쪽을 파고 들었다. 이어 이상훈의 2구, 한가운데 낮은 슬라이더가 들어오자 이승엽이 부드럽게 방망이를 돌렸다. 경쾌한 타구음을 낸 공은 오른쪽으로 125m를 뻗어가며 관중들이 고대하던 관중석 너머로 떨어졌다. 이승엽은 베이스를 돌며 두손을 치켜들었고 관중들은 일제히 자리를 박차며 야구장이 떠나갈 듯 함성을 토해냈다.

이어 타석에 들어선 마해영이 LG의 바뀐 투수 최원호를 노려봤다. 원스트라이크 원볼 상황에서 마해영이 최원호의 3구를 힘차게 밀어쳤다. 마해영의 타구도 이승엽 타구의 궤적을 따라가다 우측 관중석에 꽂혔다. 다시 한번 열광에 휩싸인 대구구장은 덕아웃을 박차고 나온 삼성 선수들과 홈팬들이 하나가 돼 눈물과 박수, 포옹으로 몸을 전율케 하는 우승의 감격, 최고의 순간을 빚어냈다. 야구장 스피커에서 그룹 퀸의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이 흘러나왔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한국시리즈 6차전(10일 대구구장)

L G 030 103 020-9

삼 성 021 200 014-10

△LG 투수=신윤호 이동현(2회) 유택현(4회) 장문석(5회) 이승호(8회) 이상훈(8회) 최원호(9회.패) △삼성 투수=전병호 배영수(2회) 김현욱(4회) 노장진(6회) 강영식(9회.승) △홈런=최동수(2회 3점.LG) 박한이(2회 2점) 이승엽(9회 3점) 마해영(9회 1점. 이상 삼성)

▲LG 김성근감독=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준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투수 이상훈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이동현은 강판 뒤 탈진해 쓰러졌다. 장문석도 걸음을 제대로 못 걸을 정도였다. 우리 선수들은 200% 이상 실력을 발휘했고 선수들의 선전과 LG 팬들의 성원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설 것이다. 4점차로 이기고 있었지만 불안해 8회 번트 지시를 하려 했는데 공격이 빨라 놓쳤다. 우린 경기에서 졌지만 승부에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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