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희 칼럼-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

중국의 당나라 시대 사람인 오긍(吳兢)이 편찬한 '정관정요(貞觀政要)'는 당나라 태종의 위업을 도운 명신들과 태종과의 정치문답을 집대성한 명저다. 이책은 중국 역대 황제들이 애독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도 들어와서 왕이나 정치인들에게 널리 읽혀지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제왕학의 교과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 '정관정요'의 제 일편 '군도(君道)'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 내용이 실려 있다. 태종이 측근들의 신하들에게 '제왕의 사업으로서 나라를 세우는 창업(創業)과 세운 나라를 지켜 나가는 수성(守成)과 어느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하고 물었다. 이에 재상인 방현령(房玄齡)이 답하기를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군웅(群雄)이 할거하는 난세에여러명의 적을 물리치고 그 쟁패전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안되므로 이를 본다면 창업이 어렵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위징(魏徵)은 반론을 제기하였다. '제왕이 일어설 때는 반드시 전조의 세력이 쇠퇴하고 천하가 어지러울 때 그 암군(暗君)을쓰러뜨리는 것이므로 백성들은 새로운 제왕을 기쁘게 맞이하게 됩니다. 대저 천자라고 하는 것은 하늘이 내려주고 백성들이 받들어 주는 것이므로 그것을 손에 넣는 것은 결코 어렵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천하를 손에 넣고 나면 마음이 교만해지고 자기의 개인적인 욕망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천자를 추대한 백성들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없고 고통에 시달리게 마련입니다. 백성들은 피폐해있을지라도 무용의 노역이 계속됩니다. 국운은 이때부터 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수성이 더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태종은 '현령은 옛날 나를 따라서 천하를 평정하는 사업에 참가하여 어려움을 겪고 여러 차례 생사의 갈림길을 헤쳐 나왔다. 그래서 창업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편 위징은 나와 함께 천하의 안정에 노력하고 있으므로 교만하고 태만한 생각이 생기게 되면 반드시 나라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걱정을 하고 있다. 그래서 수성을 어렵다고 한 것이다. 두 사람의 말은 모두 옳다. 그러나 이제창업의 어려움은 과거의 일이다. 앞으로는 그대들과 함께 조심해서 수성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자'고 하였다.

이 지구상의 긴 역사상 수많은 나라가 세워졌다가는 또 멸망해 갔다. 또 모든 나라에서는 수많은 정권이 명멸해 갔다. 사라져 간 나라나 정권들은 각기 나름대로 그것을 잃게 된 이유에 대해 그럴듯한 사유를 들어 변명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원인은 크게 본다면 집권자가 창업의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수성의 대업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창업이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어려움 속에 이룩한 창업이라고 해서 그 통치권을 승리의 전리품으로 착각하여 백성들의 복지에 전념해야 할 공직들을 창업공신들에게 논공행상용으로 배분하고, 또 그 공신들은 창업을 하기까지의 고통을 보상받기 위하여 창업으로 이룩한 열매를 갈기갈기 찢어가는데 여념이 없다면 어찌 그 나라가 온전히 보전될 수 있을까.

나라가 기울어지는 원인은 지도자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지도자의 존재는 영향이 큰 것이다. 나라의 지도자가 현명하여 인물의 기량을 판별하는 눈을 가지고 적재적소에 구별하여 쓰고 판단력이나 통솔력이 뛰어나며 덕망을 구비한다면 그 밑에 악신(惡臣)이 발호할 여지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창업공신들도 주군의 개인적인 충신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헌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군(賢君) 밑에 사신(邪臣)은 없기 때문이다. 현군과 현신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나라의 수성에 전념한다면 왜 나라가 기울어지고 정권이 넘어지겠는가.

이제 16대 대통령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각 후보들은 창업의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치열한 선거전에 몰두하고 있다.그런데 한결같이 모든 후보들은 창업만 성취된다면 수성은 문제가 없다고 자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권의 창업을 꿈꾸는모든 후보자들은 창업보다 수성이 얼마나 더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수성에 실패한 지도자를 보지 않았던가.

이상희(전 대구시장.영광학원 이사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