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인생여초로

"인생여초로(人生如草露) 회합부다시(會合不多時)".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다는 말이다. 인생의 무상함을노래한 시이다. 이 시의 작가는 뜻밖에도 희대의 폭군이었던 연산군이다. 그러나 연산군은 이 시 외에도 재위 12년 동안 많은 시를 지었다.

'중종실록'에 보면 폐위된 연산군의 시집들을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고, '연산군일기'에는 지금까지 120여 편의 시가 남아있다. 그는 불과 열흘 뒤에 일어날 중종반정과 자신의 폐위도 마치 예언자적 감수성을 가지고 이 시에 담아 절절한 인생회한을 노래했던 것이다.

수년 전,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TV 대하 역사극 '용의 눈물'의 메시지 역시 인생의 무상함, 권력의 무상함이었다. 하륜이라는 인물은 그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 속에서 용케도 살아남아 태종 때 마침내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르고 천수를 누린다.

하지만 자신의 죽을 운명을 직감한 그는 마지막 순간에 "인생여조로(人生如朝露)"를 노래하면서, "인생무상(人生無常),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글을 남긴다. '인생은 덧없고, 인생이 만든 것 역시 그대로 있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죽음 앞에 선 그에게 재상의 명예와 권세가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대통령 선거를 40여 일을 앞둔 지금, 언젠가는 다 놓고 떠나야 하는 인생 길에서 끊임없이 움켜쥐려고 발버둥치는 세상을 바라볼 때마다 연민의 정을 느낀다. 한동안 진흙 밭에서 개싸움을 벌이다가, '그들의 때'에 더 많은 떡고물을 찾아서, 도대체 부끄러운 줄 모르고 흩어지고 모이는 이 세태는 안타깝다 못해 처량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들 자칭 지도자란 딱지를 붙이고 사는 분들이 아닌가! 이 씁쓸한 계절이 올 때마다 성서의 '전도서'에 나오는 지혜자의 목소리가 더욱 그리워진다.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기독교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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