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족보다 못한 '개구리…' 경찰

경북대 법의학팀은 12일 '개구리소년 신원 확인 및 법의학적 감정 중간 보고회'를 갖고 소년들이 실종 당일 유골 발견 현장에서 살해된 뒤 암매장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곽정식 단장은 "우철원.김영규.김종식군의 두개골에서 둔기와 날카로운 흉기에 맞아 생긴 손상 흔적이 수십개 발견됐으며, 그로 인한 많은 출혈로 사망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날 법의학팀은 우철원군의 두개골에서 25개, 김종식.김영규군 두개골에서 각 10여개의 외부 힘에 의한 손상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흔적은 ㄷ자 형태의 예리한 흉기로 내리칠 때 생기는 비스듬한 모양이며, 일반적으로 외부 충격이 가해질 때 생기는 여러 개의 골절(선상골절)도 함께 발견됐다는 것이다.

또 법의학팀 채종민 교수는 "이런 손상흔으로 봐 정신.성격 이상자의 소행이며 2명 이상의 범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다섯명이나 되는 어린이들을 혼자서 해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상의와 내의 우측 옷깃이 찢겨져 있었던 김영규군 옷도 붙잡히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으로 보여 또다른 범인이 있었다는 판단의 자료가 된다는 것. 옷에서 발견된 매듭은 붙잡힌 영규군의 눈을 가리기 위해 묶은 것으로 판단됐다.

피살 장소와 관련해서는 경상대 손영관 교수도 같은 판단을 제시했다. 퇴적학 검사를 진행해 온 손 교수는 "여러 검사 결과 유골 지점 계곡에 있던 퇴적물에 의해 인위적으로 매장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며칠 전 경찰에 별도로 제출했다.

법의학팀 감식 결과가 타살로 나오자 경찰은 조난사 등으로 분산 배치했던 수사력을 타살 중심으로 집중키로 했다. 경찰은 13일 지방경찰청 강력계장과 강력팀 등 5명을 추가 파견해 수사본부를 50명으로 보강했으며, 법의학팀에서 제기한 범죄용 특이형태 무기 제보를 위한 홍보전단 5천매를 만들어성서공단 등에 배포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개구리소년들이 타살됐다는 법의학팀 판단이 나오면서 사건 발생에서부터 유골이 발굴된 이후에도 안이하게만 대응했던 경찰이 과연 '누가 왜 죽였는지 범인을 밝혀낼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실수만 되풀이 해 왔다. 1991년 실종 당시 경찰은 이들이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보다는 단순가출로 오판했다. 유골이 발견된 지난9월26일에도 최초 현장을 훼손해 중요 단서 확보 기회를 스스로 묻어버렸다.

더욱이 유골이 발견된 직후 경찰은 소년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저체온사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해 유족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12일 법의학팀의 발표가 있은 후에도 경찰은 "감정 결과에서도 결정적인 단서가 나타나지 않아 수사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개구리소년 사건은 사인만 밝혀진 채 영구 미제로 남을 우려를 드높이고 있는 것이다.

◇안이했던 초기 대응 = 개구리소년 실종 당시 경찰은 헬기와 경찰력 32만명(연인원)을 동원해 700여 차례에 걸쳐 와룡산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고 했지만 결과는 헛탕이었다.

그런 한편으로 경찰은 타살 가능성을 낮게 본 채 모험성 단순 가출에 초점을 맞췄다. 4개월 동안의 수색에도 소년들을 찾지 못하자 경찰은 앵벌이 조직 납치,소형어선 납치, 영세 가공업체 강제 고용 등을 용의 선상에 올리면서 수사 방향을 전환, 전국을 떠돌아 다녔다.

사건 발생 100일이 지난 후에야 경찰은 수사를 원점으로 돌리고 목격자를 대상으로 재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초동수사 실패를 뼈저리게느껴야 하던 시점이었다.

◇또한번의 실수 = 지난 9월 유골이 발견되고도 경찰은 또 실수를 저질렀다. 현장을 생각 없이 훼손함으로써 중요한 단서를 스스로 묻어 버린 것. 유해 발견 신고가 접수되자 경찰은 독자적인 유골.유류품 발굴을 끝내고 유골 등을 다른 곳으로 옮겨 신문지와 흰천으로 덮어 놨다. 경북대 법의학팀 등의 현장 감식은 그다음날에야 이뤄졌다.

경북대 법의학팀 곽정식 단장과 채종민 교수는 12일 발표를 통해 "현장 훼손으로 많은 정보를 얻지 못해 유감스럽다"는 말을 여러번 되풀이 했다. 그러면서 "유골 발굴을 포함해 범죄 관련 사체가 발견됐을 경우엔 법의학자 동의 없이 훼손하지 말아 달라"고 무려 5차례에 걸쳐 경찰에 당부했다.

감식을 자문한 미 데이비드슨(Davidson)대 헬렌 조 법의인류학 교수도 자문 결과통보서에서 "초기 현장 훼손으로 귀중한 정보를 얻지 못한 것을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명시했다.

◇경찰 믿을 수 있나? = 이런 가운데 경찰은 유골 발견 당일 곧 바로 "산에서 길을 잃고 조난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사고사로 단정함으로써 수사 의지를 스스로 꺾은 셈이었다.

법의학팀 곽정식 교수는 "법의학적으로는 타살 등 다른 사인이 없다는 것이 최종 증명된 이후라야 사고사라고 할 수 있다"며, "경찰의 섣부른 예단이 수사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셈이 됐다"고 했다.

유족들이나 시민단체들은 "지금까지 오판을 거듭한 경찰이지만 무참히 살해당한 아이들을 생각해 범인 검거만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법의학팀 감식 결과가 타살로 나오자 경찰은 조난사 등 수사에 분산 배치했던 수사력을 타살 중심으로 집중시켰다.

또 13일 지방경찰청 강력계장과 강력팀 등 5명을 추가 파견해 수사본부를 50명으로 보강했으며, 법의학팀에서 제기한 범죄용 특이형태 무기 제보를 위한 홍보전단 5천매를 만들어 성서공단 등에 배포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지난 9월26일 개구리소년 유골이 발견되자 경찰은 저체온사로 속단했지만 유족이나 언론.전문가들은 타살 쪽에 더 무게를 뒀다. 숨진 어린이들모두가 현지 지형에 익숙한데다 초교 고학년생들이 많아 길을 잃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발견 다음날 현장을 감식한 경북대 법의학팀은 영규군의 특이한 상하의 옷매듭을 추가로 발견, 타살 의혹을 증폭시켰다. 그 다음날 오후 7시 경북대 해부학실습실에서 있은 1차 감식결과 발표 현장에서는 타살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김영규군의 어머니 최경희(47)씨는 "영규의 상의와 내의 우측 깃 부분이 뜯겨져 나간 흔적을 봤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그것은 살해 위협을 당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였다는 것. 이 주장은 법의학팀 감정 결과와 거의 일치했다.

최씨는 또 영규군의 유골은 모두 옷 안에 있었는데 유독 왼팔 팔꿈치에서 어깨에 이르는 뼈는 다른 곳에서 발견됐다고도 했었다. 같은날 발굴된 5명의 두개골 중 한개에서 함몰 흔적과 2개의 구멍이 발견되자 타살 의혹은 더 깊어졌다. 이에 경찰은 유해 발견 사흘 후이던 9월29일 죽음에 얽힌 7가지 의문을 공식 발표했다.

손발 부분이 묶인 옷에서 유골이 발견된 점, 일부 유골이 돌에 눌려져 있었던 점, 대대적 수색이나 가지치기 때도 유골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이 그것. 그 후 경찰은 전면 재수사를 시작했다.

경찰은 이때 설정한 3대 수사 방향에서 여전히 저체온증 사고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했다. 또 한가지 방향이었던 유탄에 맞았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실종 당일이 지방선거 투표일이라 인근 군부대가 사격 훈련을 하지 않았고 저격수라도 5명을 한꺼번에 쏠 수는 없다는 점 등을 들어 가능성이 극희 희박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10월1일 현장 주위를 조사한 대구산악구조대는 당시 주변 상황과 현장 지형으로 미뤄 조난사 가능성은 낮다고 이의를 제기했다.엽상욱(42) 구조대장은 "유골 발견 장소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피난할 만한 장소가 아니고, 조난 당할 경우 누군가 한 명은 반드시 도움을 요청하러 무리를 떠나는게 일반적인 현상인데도 5명이 같은 장소에서 유골로 발견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같은 시기에 유족들은 영규군의 옷 매듭, 두개골 중 1개의 두개골 정수리 부분이 함몰된 점 등을 중시해 '살해 후 암매장 혹은 사체 유기' 쪽에 무게 중심을 두기 시작했다. 10월2일 매일신문사를 찾은 산악전문가 김모씨는 김영규군의 매듭진 상하의를 놓고 "소년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묶었다고 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제시했다.

안나푸르나.칸첸충가 등 히말라야 고봉 등정만 16년 경력을 가진 김씨는 "추위에 상의를 벗어 얼굴을 감싸는 건 상식 밖"이라며 "매듭 강도로 볼 때도 이런 매듭은 성인 남성만이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0월3일 경찰과 유골 현장 일대 주민들은 "개구리소년들이 과연 마을 불빛을 볼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에 대해 이견을 드러냈다. 유광희대구경찰청장은 수사본부를 찾은 이팔호 경찰청장에 대한 수사브리핑을 통해 "유골 현장과 인접 서촌마을은 300m 정도 떨어져 있지만 마을 앞의 '안산'이 가로막고 있어 마을 불빛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서촌마을 주민들은 전혀 다른 판단을 제시했다. 마을 자체는 '안산'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마을에서 떨어져 안산 고지대에 있던 4채의 민가의 불빛은 못볼리 없다는 것이었다.

10월7일 매일신문이 지광준 강남대 교수, 박순진 대구대 교수 등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했을 때, 전문가들은 12일 법의학팀 발표와 매우 유사한 결론을 유추해 냈다. 단독범의 소행일 가능성은 거의 없고 피살 장소가 유골 현장이거나 멀잖은 곳에서 당했을 것으로 추리했던 것.

또 5명이나 한꺼번에 희생된 점으로 미뤄 정신이상자의 소행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소년들이 제3의 범행을 목격했거나 누군가의 숨기고 싶은 약점을 우연히 발견했다가 이를 은폐하려는 범인들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도 이때 제기됐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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