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상덕의 대중문화 엿보기-한국연예계 현주소

"감독이 영화 속의 역할을 준비하기 위해 물건을 훔쳐보라고 시켰다". 할리우드의 여배우 위노나 라이더가 밝힌 5천500달러 상당의 고급디자이너 제품을 훔친 이유다.

죄의 유무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배우가 연기를 위해 절도를 했다는 거다. '작은 아씨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 '순수의 시대'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경력의 연기자이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지난 1일 미국영화협회가 제정한 '생애업적상'의 31번째 수상자로 발표된 로버트 드 니로는 "완벽한 인물에 대한 몰입으로 영화에 대한 배우의 공헌을 낮게 평가하는 평론가의 시각을 바꿔놓았다"며 극찬을 받은 인물.

'언터처블'에서는 알 카포네의 얼굴과 비슷해지려고 머리카락을 뽑았고, '대부 2'의 시칠리아 사투리를 배우기 위해 18개월을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제 59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신인 배우상을 수상한 '오아시스'의 문소리는 중증장애인 역을 위해 수개월간이나 장애인을 위한 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그때 사귄 두 명의 장애인과 지금도 친구로 지내고 있다.

배우는 자신의 몸과 음성, 시각과 소리를 통해 예술적 경험의 세계를 창조하는 직업인. 관객이 자신과 유사한 정신적 활기를 느끼도록 생동감을 주어야 한다. '환타지'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살아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배우의 몫이다.

하지만 요즈음의 우리나라에는 이런 배우들을 찾기 어렵다. 감독이나 작품에 흥미를 느껴 출연을 고집하는 배우가 줄어들고 있다. 시나리오를 직접 읽는 배우가 드물고 매니저의 계획과 노선이 먼저다.

'스케줄을 조정해 달라', '뒷모습이나 롱샷은 대역을 써 달라', '영화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을 올려 달라'는 매니저의 무식한 요구가 새삼스럽지 않다. 매니저를 빗댄 '왕자를 태운 백마가 왕자인양 착각하고 있다'는 비아냥거림이 일반화될 정도다.

나아가 기획사가 스타급 배우를 무기로 제작에까지 손대고 있다. 드라마 '장희빈'을 둘러 싼 외주제작자와 KBS 담당 PD간의 폭행사고는 그런 와중에서 빚어진 사고다. '모래시계'의 명PD 김종학이 연출한 드라마가 시청률경쟁에서 참패하고 조기에 종영된 시기는 자신이 만든 프로덕션에서 제작하면서부터다.

제작비를 아끼면서 드라마의 완성도가 떨어졌다. 지금 방송되는 드라마 곳곳에 상표선전이 넘치는 것도 돈 때문이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손실을 입는다'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을 전략으로 삼는 한국대중문화산업이다.

한상덕(대경대 방송연예제작학과 교수 sdhant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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