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합천호 일주

늦가을 호수에 낭만이 피어오른다. 물가의 갈대 때문도, 찬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때문만도 아니다. 이른 아침. 합천호는 물안개로 뒤덮인다. 어느 쪽이 앞이고 뒤인지 분간도 하기 어려운 상태.

수면도 하늘도 지워버렸듯 물안개는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조차 빨아들여 고요하다. 꿈인 듯 현실인 듯 몽롱해진다. 햇살이 이런 적막을 뚫고서야 겨우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

그제서야 어렴풋이 가을 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요일 새벽잠을 참으며 달려온 대가치고는 굉장한 풍경이다. 여전히 수면 위로는 물안개의 여운이 계속 피어오르고 있다.

합천호는 어느 계절에 가더라도 운치가 있지만 늦가을 물안개가 특히 일품이다. 중년부부면 어떻고 연인들이면 어떤가. 새벽바람이 더 매서워지기 전에 물안개 여행을 떠나 보자. 맑은 날씨에 아침기온이 낮고 일교차가 큰 요즘이 물안개 감상의 최적기. 지척인 황매산으로의 가벼운 산행과 환상적인 드라이브는 새벽녘 부지런을 떤 덕분에 얻을 수 있는 덤이다.

합천호반 드라이브의 출발점은 댐쪽. 봉산대교 쪽이 대구에서 더 가깝지만 이왕 새벽녘에 나선 길. 호수 주변을 따라 한바퀴 돌아오기엔 댐쪽이 편리하다. 댐 전망대에 올라보면 호수가 꽤 넓다.

절로 옷깃을 여밀 만큼 바람이 차다. 이곳이 물안개 감상 포인트. 아래쪽으로도 보조댐 있는 곳까지는 물안개가 가득하다. 하지만 도시인들에겐 낭만이고 절경인 물안개도 현지주민들에겐 애물단지일 뿐이다. 한해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물안개가 숨겨두었던 늦가을 풍경들이 조용히 드러날 즈음 서둘러 산행을 떠난다. 전망대에서 오른쪽으로 합천호를 끼고 달리면 이미 황매산군립공원에 들어선 것이다. 회양관광지 가기전 호반도로 옆쪽으로 바위산인 황매산(1,108m)이 숨어있다. 하봉, 중봉, 상봉 세 봉우리가 정상을 이루고 있다.

서쪽 상봉에서 동쪽으로 연이어 솟은 봉우리들이 이룬 기막힌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우리나라 제일의 명당자리로 알려진 '무지개터'의 막힘없는 전경이 펼쳐져있다.

모산재(767m)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 황매산 아래엔 신라시대 고찰인 영암사지가 있다.

주춧돌이 꽤 큰 절터였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보물로 지정된 쌍사자석등, 3층석탑, 귀부는 아직까지 위엄을 잃지않고 금당지 등 건물터가 1,000년의 세월을 말없이 증언해주고 있다.

가회면 둔내리-황매정사-무지개터-모산재 정상-황매산성터-순결바위-영암사지가 일반적인 산행코스로 3~4시간 걸린다.

황매산과 영암사터에서 늦가을 정취에 물들었다면 이젠 가을 호반의 상쾌함에 흠뻑 젖을 때다. 1989년 준공된 합천댐 호수는 협곡을 따라 긴 모양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오히려 탁 트여 광활한 소양호보다 더 매력있다.

산줄기에 감춰진 호수는 끝인가 싶으면 다시 나타나 다른 골짜기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합천에서 댐을 지나 보조댐, 용문정, 회양관광지, 새터관광지, 봉산대교로 이어지는 댐 일주도로는 봄철 백리벚꽃길로 알려진 만큼 낭만적인 드라이브 코스. 하지만 아직까지 단풍이 완연한 늦가을은 연인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봉산대교에서 묘산쪽으로 가다 권빈삼거리서 우회전하면 합천으로 가는 1034번 지방도. 이곳에서 계산리까지가 드라이브의 하이라이트. 꼬불꼬불 굽이를 돌때마다 합천호의 다른 풍경이 반긴다.

계산리 앞쪽 호수는 새벽 물안개도 좋지만 흐리거나 비오는 날도 분위기가 괜찮은 곳이다. 이곳은 경치좋은 곳에 으레 있을 법한 여관도 보이지 않아 더 운치 있다. 신천동승강장에서 합천쪽으로 바로 가지 않고 우회전해 동네를 지나 비포장도로가 나타나는 곳까지 가볼 만하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맛집=합천의 맛은 토종흑돼지. 황매산 입구인 대병을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회양관광지 내에 있는 황강호식당(055-933-7018)은 합천토종흑돼지 전문점이다. 두껍게 썰어 온 생고기에 왕소금을 뿌려 숯불에 구워 먹는다.

돼지비계까지 맛이 색다르다. 새끼를 낳지않은 암퇘지만 쓰는게 맛의 비결. 1인분에 6천원. 댐이 완공된 후 시설지구에 입주하고부터 지켜온 가격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1인분만 먹어도 배부르다. 손크게 담아오는 김치도 이 집의 자랑거리. 신김치를 석쇠에 구워 고기를 싸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합천호의 또 다른 맛인 빙어는 1, 2월이 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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