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인 밝혀진 '개구리소년' 범인 잡을 수 있나

개구리소년들이 타살됐다는 법의학팀 판단이 나오면서 사건 발생에서부터 유골이 발굴된 이후에도 안이하게만 대응했던 경찰이 과연 '누가 왜 죽였는지 범인을 밝혀낼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실수만 되풀이 해 왔다. 1991년 실종 당시 경찰은 이들이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보다는 단순가출로 오판했다. 유골이 발견된 지난 9월26일에도 최초 현장을 훼손해 중요 단서 확보 기회를 스스로 묻어버렸다.

더욱이 유골이 발견된 직후 경찰은 소년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저체온사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해 유족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12일 법의학팀의 발표가 있은 후에도 경찰은 "감정 결과에서도 결정적인 단서가 나타나지 않아 수사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개구리소년 사건은 사인만 밝혀진 채 영구 미제로 남을 우려를 드높이고 있는 것이다.

◇안이했던 초기 대응 = 개구리소년 실종 당시 경찰은 헬기와 경찰력 32만명(연인원)을 동원해 700여 차례에 걸쳐 와룡산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고 했지만 결과는 헛탕이었다.

그런 한편으로 경찰은 타살 가능성을 낮게 본 채 모험성 단순 가출에 초점을 맞췄다. 4개월 동안의 수색에도 소년들을 찾지 못하자 경찰은 앵벌이 조직 납치, 소형어선 납치, 영세 가공업체 강제 고용 등을 용의 선상에 올리면서 수사 방향을 전환, 전국을 떠돌아 다녔다.

사건 발생 100일이 지난 후에야 경찰은 수사를 원점으로 돌리고 목격자를 대상으로 재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초동수사 실패를 뼈저리게 느껴야 하던 시점이었다.

◇또한번의 실수 = 지난 9월 유골이 발견되고도 경찰은 또 실수를 저질렀다. 현장을 생각 없이 훼손함으로써 중요한 단서를 스스로 묻어 버린 것. 유해 발견 신고가 접수되자 경찰은 독자적인 유골.유류품 발굴을 끝내고 유골 등을 다른 곳으로 옮겨 신문지와 흰천으로 덮어 놨다. 경북대 법의학팀 등의 현장 감식은 그 다음날에야 이뤄졌다.

경북대 법의학팀 곽정식 단장과 채종민 교수는 12일 발표를 통해 "현장 훼손으로 많은 정보를 얻지 못해 유감스럽다"는 말을 여러번 되풀이 했다. 그러면서 "유골 발굴을 포함해 범죄 관련 사체가 발견됐을 경우엔 법의학자 동의 없이 훼손하지 말아 달라"고 무려 5차례에 걸쳐 경찰에 당부했다.

감식을 자문한 미 데이비드슨(Davidson)대 헬렌 조 법의인류학 교수도 자문 결과통보서에서 "초기 현장 훼손으로 귀중한 정보를 얻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명시했다.

◇경찰 믿을 수 있나? = 이런 가운데 경찰은 유골 발견 당일 곧 바로 "산에서 길을 잃고 조난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사고사로 단정함으로써 수사 의지를 스스로 꺾은 셈이었다.

법의학팀 곽정식 교수는 "법의학적으로는 타살 등 다른 사인이 없다는 것이 최종 증명된 이후라야 사고사라고 할 수 있다"며, "경찰의 섣부른 예단이 수사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셈이 됐다"고 했다.

유족들이나 시민단체들은 "지금까지 오판을 거듭한 경찰이지만 무참히 살해당한 아이들을 생각해 범인 검거만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법의학팀 감식 결과가 타살로 나오자 경찰은 조난사 등 수사에 분산 배치했던 수사력을 타살 중심으로 집중시켰다. 또 13일 지방경찰청 강력계장과 강력팀 등 5명을 추가 파견해 수사본부를 50명으로 보강했으며, 법의학팀에서 제기한 범죄용 특이형태 무기 제보를 위한 홍보전단 5천매를 만들어 성서공단 등에 배포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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