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마다 켜켜이 때 묻은 삶의 흔적이 있다. 비바람에 젖고 사람에 시달려 삭아 내리는 것이 있는가하면 더러는 누더기처럼 복원하여 그 원형을 가늠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문화재란 이름으로 혹은 민속재란 이름으로 우리들에게 위안을 준다. 이끼 낀고택이나 불탑 혹은 삐뚤어진 돌장승…. 하나같이 그 시절을 엿보게 하는 내밀한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아무리 값진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그것을 보고 느끼지 못한다면 별 의미가 없다. 썩다 남은 나무토막이요 하나의 돌덩이에 불과하다.그것은 오로지 알아보는 사람 앞에서 다시 살아나 천가지 너울을 쓰고 만가지 표정을 지으며 따뜻한 눈빛을 흘린다.
오랫동안 문화유적지는 곧 유원지라는 인식의 등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수준은 그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도 안내를 위한 입간판의간단한 설명에 만족해야 했다.
안내서의 내용은 겉핥기 식이고 전문 안내요원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일전 옥산서원에서의 환대(?)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서원 안내에 신명을 뿜는 곽영근씨를 만난 까닭이다.
친절하고 해박한 그의 설명을 듣노라면 서원의 건축구조로부터 회재 이언적(李彦迪)의 학덕에 이르기까지 한 강좌 꼼꼼하게 챙기게 된다.그는 일당 2만7천여원에 고용된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의 남다른 열정은 굳게 잠긴 역락문(亦樂門)의 빗장을 풀게 하고 낡은 기와집에 새 생명을 불어넣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문화재는 후대를 위해 고스란히 보존 관리하고 전승토록 할 뿐만 아니라 현세대가 만족스럽게 향수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전문 관리에 더하여 그 숨은 빛을 끄집어 낼 줄 아는 전문 안내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문화의 숨결이 도시를 감싸고 있는 경주시의 경우 금년 들어 처음으로 지방문화재 안내요원 예산을 배정하였다 한다.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행정가들의 깊이 있는 인식과 함께 예산도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국민들이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보다 고급스럽게 향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정식 육군 3사관학교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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