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소년들은 와룡산 위 다른 장소에서 살해된 뒤 유골 발견 지점으로 옮겨져 암매장됐고, 옷 매듭은 사체 결박·운반용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매일신문 취재팀이 법의학팀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14일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다시 들은 결과 종합된 것. 이를 바탕으로 개구리소년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피살·매장됐을지 재구성해 본다.
◇범인들을 맞닥뜨리다=개구리소년 5명은 지방선거 투표일이어서 공휴일로 지정됐던 1991년 3월26일 아침을 먹고는 오전 9시쯤 마을 주변에서 만나 오전까지 놀았다. 그러다 도롱뇽을 잡으러 가자며 낮 12시쯤 와룡산으로 향했다. 집에서 1km쯤 떨어진 불미골 저수지 인근에서 열심히 도롱뇽을 찾고 있던 어린이들이 오후 2시쯤 인근 주민에 의해 목격됐다.
소년들은 도롱뇽을 잡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와룡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오후 늦게 2명의 남자를 만났다. 이들이 범인. 이들은 뭔가 숨겨야 할 일을 들켰고 그때문에 이를 목격한 소년들을 그냥 놔 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숨겨야 할 일은 개구리소년들 중 일부에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일 수도 있다.
범인 숫자와 관련해 범죄학자인 지광준 강남대 교수는 "3명 이상이 범행했다면 11년이 지나도록 사건이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은 적다"고 했다. 또 혼자서는 5명이나 되는 소년들을 물리력으로 제압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범인이 2명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우발적인 피살=범인들은 순간적으로 소년들을 흉기로 위협해 인적 드문 산 속으로 끌고 갔다. 이 과정에서 날쌘 영규군은 탈출을 시도했다. 범인 중 1명이 뒤쫓아가 붙잡는 과정에서 영규군의 상의와 내의 옷깃이 찢어졌다. 범인은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 영규군을 제압한 뒤 다시 도망치지 못하게 상의를 얼굴에 씌웠다.
이를 본 소년들은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범인들은 침묵 시키기 위해 위협을 가했으나 여의치 않자 한 명이 들고 있던 둔기로 소년 3명의 머리를 미친 듯이 내리쳤다. 흉기를 안가졌던 또다른 범인은 나머지 소년들의 목을 졸랐다.
이 과정에서 총기는 사용되지 않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결론지었다. 총기화약 안전기술협회 윤종영 검사팀장은 "두개골에 발생한 홈의 크기가 시중에 유통되는 공기총 산탄 흔적과 비슷하지만 공기총탄은 절대로 뼈를 못 뚫는다"고 했다.
개조를 아무리 잘 해도 마찬가지라는 것. 또 위력이 더 강한 엽총이었다면 현재 발견된 것보다 훨씬 큰 골절을 생기게 한다고도 했다.
14일 경찰·법의학팀이 실시한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산탄 대신 구리·철사 조각을 25~30개씩 공기총에 넣어 돼지머리·은행나무·참나무 등에 실험 발사해 봤으나 소년들 두개골 손상흔적과는 전혀 다른 흔적이 나타난 것.
◇소년들을 옮겨 묻다=다급해진 범인들은 사체 묻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은폐 필요성이 있는데다 삽 등 땅을 깊게 팔 도구가 없었고, 있다 해도 땅이 얼어 파기가 쉽잖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범인들은 산을 여기저기 뒤지던 중 유골 발견 지점을 선택한다. 자연적으로 골짜기 진 곳이어서 사체를 넣은 뒤 비교적 쉽게 흙 등으로 덮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범인들은 소년들을 묻을 위치로 옮겼다. 16년 경력의 전문산악인 하찬수(36)씨는 "영규군의 옷 매듭은 처음엔 눈을 가리고 못 움직이게 하려고 묶은 것이고 살해 후에는 사체 운반을 위해 쓰여진 것 같다"고 했다.
소년들을 움푹진 곳으로 모두 옮긴 범인은 그 위를 흙으로 덮었다. 그리고 11년 반이 흐르는 동안 비바람이 그 흙을 조금씩 깎아내리거나 다시 쌓아 올렸다. 지난 여름에야 많은 비로 덮였던 흙이 씻겨 내려가 유골 일부가 지상으로 드러났고, 도토리를 주우러 산에 올랐던 인근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그러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은 현장을 마구 훼손, 소년들이 살해 후 바로 묻혔는지 아니면 어느 정도 부패된 뒤 묻힌 것인지 감정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사체는 이동됐다=계명대 경찰학부 최응렬 교수는 "현장을 살펴본 결과 유골이 발견된 계곡 지형은 개구리소년 5명과 2명 이상의 범인이 함께 들어가기에는 너무 좁아 살해가 이뤄진 장소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보다 넓은 다른 지점에서 살해한 뒤 범인들이 옮겨 암매장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강남대 지광준 교수는 "유골 현장에서 찬인·호연군의 상의가 발견되지 않은 것도 사체 이동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사체를 옮기던 중 핏자국이 많은 옷을 은폐했을 것이라는 분석인 것.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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