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한·미·일 대북 중유지원 논의를 바라보면 우리 정부의 실없음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미국 공화당의 중간선거 승리 이후 부시의 대북 강경책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대북 유화정책을 추진해온 우리 정부로서는 입지가 그만큼 좁아져 과거 이상의 정제된 목소리와 공조전략이 요구되고 있었다.
그런데 대북(對北) 주무부처인 통일부 정세현(丁世鉉) 장관이 엉뚱한 발언을 늘어놓아 안팎으로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다. 정 장관은 한 조찬모임에서 "대북 중유지원은 내년 1월까지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
북한 핵 개발에 따른 국제 제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더욱이 그는 한·미·일 3국의 입장 차이를 노출시켜 제재공조를 무너뜨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이처럼 정 장관이 물의를 빚자 외교통상부가 정 장관의 발언을 정부 공식입장이 아닌 것으로 해명하는 등 꼴불견을 연출하고 말았다.
이번 중유 지원은 향후 대북 관계를 설정한다는 중대성이 있지만 비용 자체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반면 북한의 핵 개발 포기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지원해야 할 경수로사업 비용은 3조5천420억원(약 30억 달러)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런 비용부담을 하면서도 정부가 미국에 끌려 다니는 인상을 주는 것은 협상능력 부재 때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번처럼 주무장관이 갈피를 잡지 못하면 국제공조에서 발언권이 실추되고 대북 비용이나 치다꺼리하는 재주 곰 노릇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미국은 대북 강경책을 앞세우며 12월과 1월분 중유지원 부담을 한·일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약삭빠른 실리 챙기기가 결코 온당하게 받아들여질 리 없다.
그러나 우리 정부도 빌미를 만들어준 게 아니냐는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이 정부 내부의 조율이 무너지면 향후 국제공조에서 수세에 몰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 결과로 바가지를 덮어 쓰게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여 두 번 다시 국제공조의 지진아가 되지 않도록 자중자애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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