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은 술자리에서 흔히 이런 말을 내뱉는다. "미칠수록 낫다". 명문(名文)을 쓰고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 넣어야 한다는 논리다. 효율적으로 미치기 위해 술의 도움을 받는 것이 과연 이상적인 자세일까.
이를 몸으로 실천한 현대시의 대부 샤를 보들레르(1821∼1867). "끊임없이 취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에 취한단 말인가? 술이건 시건 덕성이건 그대 좋을 대로 취할 일이다". 예술과 취기(醉氣)의 상관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아니겠는가. 보들레르는 술을 일종의 차표, 위조한 차표쯤으로 여겼다. 일상의 역을 떠나 하늘로 실어다주는 차표 말이다.
프랑스의 젊은 소설가 알렉상드르 라크루아는 '알코올과 예술가(마음산책 펴냄)'를 통해 왜 그토록 많은 예술가들이 탐닉했으며 수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됐는지를 심각한 태도로 풀어가고 있다. 이 책은 '예술이 술에 얼마나 빚을 지고 있을까'라는 사고를 바닥에 깔고 있다.
'나는 타인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초현실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1854∼1891)도 지독한 술꾼이었다. 랭보와 퇴폐주의 시인들은 끊임없이 술을 마시면서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했다. 랭보는 "그 푸른빛 도는 화주가 가져다주는 취기야 말로 '가장 우아하고 하늘하늘한 옷'"이라고 했다.
'길 위에서'로 비트세대를 탄생시킨 미국의 소설가 잭 케루악(1922∼1969)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은 술에 취해 극도의 흥분상태로 책상에 앉을 것"이라고 권할 정도였다. 자전적 소설 '연인'을 쓴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는 하루에 포도주 6ℓ씩 마셔가며 글을 쓰기로 유명했다. 알코올 중독상태에서 글을 쓴 그녀는 "술을 마심으로써 나 자신이 완전히 해체되는 걸 보는게 큰 즐거움이었다"고 털어놨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투안 블롱댕은 "사람들이 밥을 먹듯이 나는 술을 마실 뿐이다"며 항상 취해있다가 가끔씩 갖는 짧은 휴식시간에 글을 썼고, 결국 술을 더 마시기 위해 죽기전 마지막 20년간 절필했다. 영국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1962년 최고걸작인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만취와 끔찍한 숙취로 이어진 보름만에 완성했을 정도로 술을 입에 달고 다녔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술은 보들레르 이후 문학의 혁신에 가장 크게 기여한 동인중 하나였다"고 했다. 과연 지금도 그러할까. 알코올은 1960년대를 전환점으로 마리화나 LSD같은 마약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이제 더이상 알코올은 효율성 측면에서 무의식과 영감, 광기의 신비를 안겨주는 매개물이 아닌 셈이다. 시인 고은이 "근래 들어 술마시는 문인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개탄하는 말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걸까.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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