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민족의 영웅' 孫基禎

"2시간 29분의 그 기나긴 싸움이 끝나 올림픽 사상 최초로 30분 벽을 깨고 결승 테이프를 가슴에 안았을 때 나를 기다리는 것은 나라 잃은 민족의 엄청난 비극이었다. 상상은 했었지만 내 우승의 표시로 막상 일장기가 올라갈 때는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암울한 일제시대인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세계 제패의 신화를 일궜던 손기정(孫基禎) 옹이 자서전 '나의 조국,나의 마라톤'에서 토로한 회상이다. 오죽하면 시상대에 오른 그의 사진을 보고 어느 독일인이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슬픈 모습'이라 했겠는가.

▲우리나라 신문도 당시 사설을 통해 그는 스포츠 이상의 승리자인 것을 기억하자고 감격했듯이, 그가 썼던 월계관은 그야말로 나라 잃은 슬픔을 딛고 민족의 기개를 세계 만방에 떨쳤던 영광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 서 있는승리자 기념비엔 'SON'이란 금박 글씨가 찬란하게 박혀 있으나 이름 옆의 국적은 여전히 'KOREA'가 아니라 'JAPAN'으로 돼 있어 안타깝다.

▲그는 언제나 '조선인'임을 잊지 않았다. 1936년 베를린 마라톤 우승 때 팬에게 써준 사인에 국적과 승리의 날짜를 적었으며,메달리스트 사인집에도 'K.C.Son'이란 영어 이니셜 밑에 '손긔정'이라 썼었다. 그가 회고한 바와 같이 어떤 방법으로라도 한국인임을 알리기위해서였을 게다. 경기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훈련 때 일장기가 찍히지 않은 트레이닝복을 입었으며, '한국 선수가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날이 내가 죽는 날'이라고 말하던 그였었다.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56년만에 우승하자 그는 '오늘의 우승은 7천만 겨레의 승리'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그 눈물은 가슴속으로만 태극기를 흔들어야 했던 한(恨)이 얼마나 깊었으며, 애국심이 얼마나 투철했던가를 말해 준다. 광복 후에도 대한체육회부회장과 각종 국제대회 한국선수단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등으로 스포츠와 육상 진흥을 위해 헌신해 왔다. 88서울 올림픽 개막식성화주자로 잠실 주경기장을 누비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오늘 0시45분 쯤, 손 옹이 지병으로 입원 48시간만에 인생 마라톤을 완주, 한 많은 '민족 레이스'를 마감하고 90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떠났다. 병상에서도 이봉주 황영조를 만날 때마다 '나라를 위해 열심히 달리고, 일본 선수들을 꺾었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했다지만, 그는 '민족혼'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986년 끈질긴 협상 끝에 반환돼 보물 904호로 보관되고 있는 승리의 '청동 투구'처럼 강인한 그의 정신력이 스포츠 뿐 아니라 민족의 정신 속에 길이 숨쉬기를 기원해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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