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어머니께서 말기암 선고를 받게 되었다. 그다지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지만 "마침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환자가 돼버린 어머니나 가족들 모두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암에 걸린 사람들의 소식들이 널려 있고 종합병원마다 암환자들로 넘쳐나는 현실이고 보면 그렇게 충격적이지도 독특한 사건도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처음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투병기간 중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며칠동안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여러 가지 결정을 내려야 할 절박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예전에는 결코 가져보지 못했던 생각들이 솟아올랐다. 그동안 제대로 사랑해 보지 못했다는 후회감과 함께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건 분명 슬픈 일이다. 헤어지고 싶지 않지만 헤어져야 하는 일들이 더러 생겨나는게 세상사이다. 하지만 죽음처럼 확실한 이별은 없다. 헤어졌다 해도 지구상의 어느 쪽에선가 살고 있다 생각하면 어느 정도의 위안은 준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물론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해본다. 믿어지지 않기는 어느 쪽도 마찬가지이다. 사랑했다기보다 사랑하는 척하면서 살았다고 할까?
그동안 왜 그렇게도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왔던가? 가장 가까운 엄마하고도 말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서 내식의 아집을 버리지 못해 괴롭혀오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소견머리 없고 불량한 존재였던지? 죽음의 문 앞에 서니 해결되지 않을게 아무 것도 없는 듯 만사가 너그럽게만 보이는데 말이다.
얼마 전 친구로부터 이혼하려던 남편이 말기암에 걸리는 바람에 집을 나갔다가 도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다 죽어 가는 남편을 차마 버릴 수 없어 들어오기는 했는데 의사가 말한 시한부의 기간을 훨씬 넘기고도 아직 멀쩡하다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일종의 해프닝처럼 가볍게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심각한 당면과제가 아닐 수 없다.
삶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슬프게 보인다. 병실에 앉아서 투병 중인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을 보면 더 슬프게 보인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지만 사람들은 애써 초연하다. 마치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온 세속에서 훌쩍 떠나 수도생활을 하거나 도를 닦으러 들어온 사람들처럼 보인다.
머리마저 깍고 밥을 굶으면서 수행 아닌 수행을 하고 있다. 병 때문이긴 하지만 세상에서 버리지 못했던 것을 버리고 난 다음의 초탈과 평화가 들여다보인다.
고령의 어머니가 감당해야 할 고통의 몫은 만만한게 아니다.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 여정에서 어머니는 사망할 수도 있고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을 꿈꾸며 도박하는 자의 심정으로 고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어머니가 선택한 몫이지만 함께 살아가야 할 가족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나는 신(神)의 장막 앞에 서 있었다. 삶과 삶이 교차하는 저편에서 세상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메시지를 전달받으려는 사람처럼 멍청해져 있었다. 분노와 허탈감이 뒤섞인 어두운 감정의 밑바닥으로부터 불쑥 또아리를 틀고 있던 사랑에의 욕구를 읽어낼 수 있었다. 사랑하지 못했으므로 사랑해야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음은 축복이고 그 축복에 감사할 때 죽음마저도 초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지않을까?
어머니는 수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듯이 보인다. 자식들에게 무거운 짐을 던지면서까지 살아남아야 할 몫과 이유는 무엇인가?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살아 있음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충분한 이유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겁니다. 블랙홀을 발견한 스티븐 호킹이 불구의 몸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떠올라서였다.
그가 와서 한 말 중 기억에 남는 건 가장 평범한 이야기였다고 할까? "세상에 태어나 이루어놓은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면 지구상에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그러므로 어머니의 삶이 얼마가 남았건 기쁜 얼굴로 축복해 주고 싶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위대한 일이므로.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