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선- 지역감정 청산될까

이번 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지역감정의 망령'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올씨다'다. 지역감정의 근원지랄 수 있는 3김씨가 뒷전으로 나앉은 이번 선거지만 변형된 형태의 지역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다시 변수가 될 수 있는 지역감정문제를 짚어본다.-편집자 주

학계.종교계.시민단체 등이 머리를 싸매고 지역감정 문제에 대해 고민했으나 원인진단에만 그칠 뿐 뾰족한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방법을찾았다 해도 실현되지 못했다.

그리고 각종 선거때마다 정치권은 이를 적절히 활용, 자기들의 이해를 충족시켰다. 그때마다 지역감정의 골은 깊어만 갔다. 88년 지역감정의 최대 수혜자 집단이기도 한 국회의 여야 정치인들이 모여 '지역감정특위'까지 만들고 지역별로 공청회도 열었으나 탁상공론에 그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고 할까.

지역감정 해소의 선봉장을 자처하던 인사들도 선거에만 나서면 지역감정 전도사로 돌변했다. 유권자들도 이들의 놀음에 덩달아 놀아났다.정책과 노선을 불문하고 오직 출신지만으로 표를 찍는 행위를 반복했던 것이다. 대통령 선거는 정도가 더욱 심했다.

■13~15대 대선

6.29 선언 이후 분출하는 민주화 요구에도 불구하고 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민주당내 상도동계와동교동계 인사들은 둘로 갈렸다. 영남 출신들은 YS의 상도동으로, 호남 출신들은 DJ의 동교동으로 단 한 사람의 이탈자도 없었다.

자칫 소신이나 노선을 들고 다른 쪽을 선택했다가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감정에 편승한 인사들은 88년 총선에서 모두 살아 남았다. 단일화를 요구하며 합류를 거부했던 사람들만 피해를 입었다. 오히려 YS, DJ어느 쪽에도 합류하지 않았던 인사들은 지역구에서 '배신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또 87년 대선 당시 집회 폭력사건은 배후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지역감정의 극명한 표출로 기억될 만한 사건이었다. 민주당의 김영삼 후보는광주에서, 평민당의 김대중 후보는 대구에서 돌 세례를 받아야 했다. 물론 민정당 노태우 후보도 광주에서 유세를 하지 못했다. 반면 '객지'에서 욕을 본 후보들은 본거지에서 열광적인 환대를 받았다.

특히 당시 김대중 후보측은 후보단일화 무산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4자 필승론'을 들고 나왔다. 즉 민정.민주.공화당의 세 후보가 각각 TK와 PK 그리고 충청 표를 나눠 가지면 DJ는 호남표와 서울.수도권 그리고 재야.학생 세력의 지원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철저히 지역감정에 기초한 논리였다.

92년 14대 대선과 97년 대선에서는 폭력사태만 없었지 나아진 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정치권의 지역감정 이용 기술은 더 지능적이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며 영남권의 남북을 하나로 묶어 호남의 몰표에 대항하자는 노골적인 구호가 선거판을 지배했다. 그것도 모자라 "000를 찍으면 김대중이 된다"로대표되는 민자당과 한나라당의 선거전략은 지역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최대의 선거 전략이기도 했다. 그리고 톡톡히 재미를 봤다.

호남의 90%가 넘는 DJ 몰표에 대항하기 위한 성격도 없지 않았지만 득표 전략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나선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구호만큼 이 지역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도 없었다.

15대 대선에서는 반 YS 정서로 똘똘 뭉친 TK 표심이 이인제 후보에게 다소 기울다 YS의 '이인제 지원설'이 터져 나오면서 결국 반 DJ라는 깃발 아래 뭉쳤다. 반 YS 감정과 반 DJ 정서가 교묘하게 결합한 형태였다. 이 때 지역에서는 YS 마스코트가 방망이 세례를 받았고 화형식도 열렸다. 역대 선거에서 동원된 지역 정서 자극을 노린 전략 가운데 최악이었다.

■16대 대선 전망

그렇다면 이번 16대 대선은 어떨까? 우선 지역감정의 화신처럼 돼버린 3김씨 가운데 누구도 출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역감정이 대선의 전면에 나타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3김씨의 그늘이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다. YS의 영향력이 부산.경남권에서 예전처럼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충청권의 김종필 자민련 총재에 대한 애정은 예전같지는 않지만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문제는 영남과 호남이다.

영남의 반 DJ 정서는 여전하다. DJ 정권 5년 동안 집권 민주당은 이 지역 선거에서 거의 전패했다. 누가 좋아서라기보다는 DJ가 미웠기 때문에정반대 편에 서 있는 한나라당 사람들을 당선시켰다. 총선도 지방선거도 예외가 없었다.

대선을 앞두고도 반 DJ 정서는 식을 줄을 모른다. 여기에는 집권 후반기에 집중적으로 터져 나온 대통령 아들 등의 권력형 비리도 한 몫을 했다. 이제는 반 DJ 정서에서 출발한 표심이 적극적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 성향으로 옮겨가 대세론 또는 대안부재론으로 굳어지고 있는 듯하다.

한나라당도 노풍과 정풍의 주역이었던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를 향해 끊임없이 'DJ의 양자.적자.서자' 등의 꼬리표를 붙이며 영남권의 반 DJ 정서 자극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때문인지 지금까지 김해가 고향인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나 울산이 지역구인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후보는 영남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출신지만 따지던 기존의 지역감정이라는 잣대로 보면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반 DJ 정서가 도사리고 있고 한나라당의 전략 또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후보단일화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 DJ 정서를 자극하는 공격은 도를 더할 전망이다. DJ 후계자 논쟁을 넘어 부패.무능한 DJ 정권의 연장 음모론과 DJ와 청와대의 단일화 사주론 등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호남권은 반대로 친 DJ 성향이 강하다. 5년간 기대와 실망도 컸지만 미우나 고우나 고향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 DJ를 제일의 선거전략으로 내세우는 이 후보 지지자는 거의 없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호남에서 이 후보는 5%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

대신 반 이회창이라면 누구에게라도 표를 줄 태세가 돼 있다. 노 후보든 정 후보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은 누가 반 이회창 세력의 '대표선수'가 될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에서 호남 역시 변형된 지역감정에 사로잡혀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번 대선도 3김씨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서 선거를 치르지는 않지만 영남과 호남표 그리고 일부의 충청표는 지역감정의 사슬을 완전히 끊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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