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생산직 인력난 어디까지 왔나

생산직 인력난에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거액을 투자해 좋은 근무 환경을 만든 '클린 사업장'은 물론 수천만원의 연봉을 보장하는 대기업조차 '생산직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고실업 상황에서도 계속됐던 생산직 인력난은 경기회복세 이후 특히 악화돼, 영세업체는 경영주 가족들이 총동원돼 공장일을 해야 하는 '패밀리(Family) 공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오래 근무한 숙련공 구하기는 엄두도 못낼 형편. 때문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생산현장이 몇년 내에 기반을 통째로 잃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고통받는 현장=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인사그룹 이기봉(39) 과장은 "고졸 사원들이 웬만한 기업체 대졸사원보다 많은 3천만원 가까운 연봉을 받지만 현재 생산직 여사원이 400여명이나 모자란다"고 말했다. 휴대폰 수출 증가로 당장 내년에 공장을 추가로 만들어야 하지만 생산 차질이 우려된다는 것. 이 때문에 이 업체는 대구.경북은 물론 부산.경남.충청도 고교들에까지 공문을 보내 고졸 생산직 사원을 모집하고 있다고 했다.

산업재해 방지시설을 잘 갖춰 노동부로부터 클린사업장으로 인증받은 대구 달성공단 성운산업은 방인백(44) 사장과 동생 방정환(34)씨가 사실상 현장 일을 맡고 있다. 동생 방씨는 "최소 2명이 더 필요하지만 이직률이 너무 높아 사람 구하기를 포기했다"며, 일이 많은 3~10월 사이는 시골에 사는 형제 2명이 와 일을 돕는다고 했다.

또다른 클린사업장인 경산 자인공단 은성정공에도 55명이 필요하지만 현재 45명뿐이다. 인력 부족보다 더 큰 문제는 기능공이 없다는 것. 공고 실습생까지 모셔와 보지만 기술 배울 의지가 없어 미숙련공 상태로 그냥 몇달 있다가 나가버린다고 했다.

대구시내 근로자를 유치하려 기숙사까지 만들었지만 허사. 기숙사에 살다가는 잔업에다 야근까지 해야 할 것이라며 외면하는 바람에 거의 비어 있다는 것.서용운(50) 상무는 "고교 정문 앞처럼 부모가 태워주는 차를 타고 출근하는 젊은 근로자들이 많다"며 그러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힘들다며 그만 둔다고 했다. 평생을 공장에서 기술 익히며 보낸 자신으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라는 것.

◇얼마나 부족할까=영천 금호읍 천막 제조업체인 성동산업 김정석(47) 사장은 지게차 운전을 몸소 하고 기계도 돌리며 장비를 점검하는 등 하루를 생산직 사원과 다름 없이 보낸다. 어쩌다 거래처 손님이 찾아오면 커피도 타야 한다. 때문에 손님 접대복도 기름때 전 작업복이다.

"15명이 필요하나 8명밖에 없습니다. 성서공단에 있을 때는 그런대로 견딜 만했지만 영천으로 오니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장사가 안되면 접겠으나 판로가 확실하고 매출도 오르니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지요".

◇외국인 근로자도 구인난=기업주들은 급한 대로 외국인 근로자라도 당겨 쓸 욕심이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총쿼터제'가 적용돼 확보가 여의치 않다고 했다.

중기협 대구경북지부 김진석(33) 주임은 "지난달 초 지역 1천139개 업체에서 5천170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신청했지만 657개 업체에 3천331명밖에 배정하지 못했다"며 "2천여명의 인력이 여전히 충원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연간 외국인 산업연수생 수입 규모를 현재 8만명에서 13만명으로 늘리기로 했으나 지금까지 증원이 확정된 것은 겨우 2만명이다.

노동부가 지난달 말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국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4천451개 중 인력 부족 업체는 24.7%(1천98개)로 지난 3월 이후 계속 20%를 웃돌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지난 9월 발표한 조사에서도 전국 8천460개 중소업체들이 평균 9.35%의 인력부족률(적정 직원수를 100명으로 했을 때 9.35명 부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남부 노동사무소 이기숙 산업안전 과장은 "근로자 50인 미만 소규모 업체가 많은 돈을 들여 산재 예방시설과 깨끗한 환경을 갖춰도 근로자들이 안 와 사용자들이 아우성을 친다"며, "고급여의 대기업이나 중소 클린사업장도 생산직 외면현상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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