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소득 전문직 건보료 되레 혜택

건강보험(의료보험)이 국민들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할 장치를 확보하지 못한채 운영돼 직장-지역 혹은 지역-지역 가입자 사이에 불균형 시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까지 직장의보로 전환된 작년 7월 이후 의사·변호사 등 일부 고소득 전문직 사업주들은 이를 악용해 보험료를 더 적게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국사회보험노조가 5인 미만 사업주 중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50명을 무작위로 뽑아 1년간의 보험료 납부 행태를 조사한 결과 드러났다. 50명 중 34명이 지역건보 때보다 보험료를 많게는 수십만원까지 적게 내고 있다는 것이다.

대구의 산부인과 개원의 정모씨 경우 작년 6월에는 21만3천800원을 냈으나 올 10월에는 1만1천430원만 냈다. 지역가입자일 때는 재산 23억5천16만원, 3500cc짜리 자동차 1대, 소득 1천430만원 등을 책정 기준으로 했으나 직장가입자가 되면서 월 소득을 63만원이라고 신고했기 때문. 이에따라 자신의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1명의 보험료(사업주 부담금)까지 합해도 정씨의 부담은 3만4천290원에 그치고 있다.

재산 15억원, 종합소득 5천843만원, 중형자동차 2대 등을 가진 수성구 김모(43) 변호사는 작년 6월 지역건보료로 27만3천200원을 냈지만 지금(신고 월소득 441만6천454원)은 직장건보료로 7만8천950원만 내고 있다. 사무실에 2명을 채용하고 있지만 그 보험료 부담금까지 합해도 19만7천460원밖에 안된다.

이에 대해 성실 납부자들의 반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회사원 최기현(33·대구 신천2동)씨는 "소득 파악 장치 부족으로 자영업자들이 내야 할 보험료를 봉급생활자들이 떠안고 있다"고 했고 이기환(44·대구 남산3동)씨는 "건보공단은 무책임하게 보험료만 자꾸 올릴 게 아니라 자영업자 소득 파악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대소득자 조영환(59·대구 상인동)씨는 "같은 자영업자라도 임대 소득처럼 완전히 소득이 드러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건보공단이 업무 편의위주의 방식으로 부과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불공평성을 주장했다.

서울대 문옥륜 보건대학원장은 "자영업자 소득 파악이 30%선에 불과한 현재 상황에서는 공평한 부과기준을 만들 수 없다"며 "소득 파악률을 60% 이상으로 끌어 올리려는 국가적 노력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경산대 김종대(55) 교수는 "지금 같은 현실에서는 보험 운영에 주민들의 참여·자치가 보장되도록 시군구 단위 조합을 구성해 운영하고 보완책으로 민간보험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직장건보 전환 관련 문제점에 대해서는 "국세청으로부터 고소득 전문직 사업주들의 종합소득 자료만 일일이 파악하면 아무리 축소 신고해도 적정한 보험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전국사회보험노조 송상호 선전국장이 지적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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